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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歐시대 20세기로 끝난다 - '문명의 충돌''밀레니엄' 書 예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서기 1000년대를 마감하는 대전환기를 맞아 식자(識者)들 사이에'문명'이란 두 글자가 회자(膾炙)되고 있다.고대문명의 흔적에서 삶의 원형을 찾는가 하면 과학기술이 펼칠 장밋빛 세상에 도취하기도 한다.외국에선 지난 1천년의 역사를 정리하는 책들이 붐을 이루고 있다.

이번주 출간된 미국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문명의 충돌'(김영사刊)과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원 펠리프 페르난데스-아메스토의'밀레니엄'(전2권.한국경제신문사)은 이같은 시대적 조류를 대표적으로 드러낸다.

인류의 지난 발자취를 차분하게 돌아보면서 21세기를 준비하는 자세를 제시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더욱이 서구문명의 일방적 우위를 목청높게 부르짖었던 서양인들의 오만과 편견을 공격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헌팅턴은 말한다.“최근까지 서구는 자신들의 문명을 가장 보편적인 문명으로 생각하고 이를 다른 국가나 민족에 강요하는 것을 당연시했다.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아메스토도 한마디 거든다.“서양의 세계 지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중에 생긴 일이며,더 약하고 짧았다”고. 다르다면 헌팅턴이 냉전시대의 적자(嫡子)인 이데올로기 대립이 사라진 현대사회의 탈출구를 세계 여러 문명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폭넓은 마음에서 찾은 반면 아메스토는 지난 1천년동안 일어났던 세계사의 주요 사건을 상세하게 되짚으며 향후 미래사회의 주도권이 태평양쪽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하고 있다.

'문명의 충돌'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책.지난 93년 저자가 인문.사회학술지인'퍼린 어페어스'에 같은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미래 관련 논의에서 단골손님격으로 거론되는 책이다.

여기서 문명은'야만'의 반대가 아니라 언어.종교등 여러가지 문화적 특질을 아우르는 개념.헌팅턴은“서구문명의 세계 정복은 피상적 현상”이라며 중국권.힌두권.이슬람권.기독교권등 7개 문명권의 갈등을 세계 정치의 핵심변수로 지목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과 아시아는 인구와 경제력을 무기로 세계질서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한다.

남북한은 이질적인 체제로 많이 달라졌으나 오랜 세월 한국인을 묶어주었던 요인들이 아직도 살아있어 10~20년안에 통일될 것이라는 메시지도 전한다.

반면 미국.일본.중국.러시아등 서로 다른 문명을 보유한 강대국 사이에 끼여있어 이들 4개국과의 조율을 통일한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고 있다.

'밀레니엄'은'1천년'을 뜻한다.여기서 저자는 이슬람.중국.중남미등 그동안 세계사 서술에서 조연으로 홀대받았던 지역을 당당히 주연의 하나로 복원시킨다.일례로 서유럽이 세계지배의 기틀을 다졌다고 알려진 중세말만 해도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조선술.지도제작.항해술등이 유럽보다 더 큰 잠재력을 확보했었다고 지적한다.

종교혁명.프랑스혁명.러시아혁명등 서양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도 일종의'지방사건'으로 바라보고 있다.화약.나침반등을 먼저 발명하고도 동양이 서양에 주도권을 내준 것은 활용과 응용 측면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최대 복병으로 화교들의 막대한 경제력을 등에 업은 중국을 꼽고 있다.새로운 산업국가의 모델을 보여줬던 한국 또한 아시아.태평양 가장자리에서 특수한 능력을 과시한 나라로 명료하게 그려지고 있다.지난 1천년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3백20여장의 사진도 실었다. 박정호 기자

<사진설명>

19세기초 중남미 인디언들과 싸우고 있는 유럽인들의 모습을 재현한 그림.세기말을 맞아 유럽인들의 세계 정복을 부정하며 문명이라는 폭넓은 관점에서 세계사를 재해석한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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