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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폐광 오염 근본대책 만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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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남 고성군 폐광지역 주민들의 혈액과 소변에서 카드뮴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높은 농도로 검출됐고, 주민들이 과거 일본 도야마(富山)현에서 발생한 이타이이타이병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환경성 질환의 규명은 학문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정밀한 역학조사가 필요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환경행정의 문제점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폐광의 환경오염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금속을 함유한 산성폐수, 광산폐기물과 먼지, 제련과정에서 생기는 광미(鑛尾) 등은 주변 토양과 하천.지하수를 오염시키고 나아가 농작물을 오염시킨다. 현재 환경부는 전국 900여개의 휴.폐금속광산 중 150여개를 특별관리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고성군 지역의 광산들도 이미 토양오염 정밀조사가 실시된 바 있다. 그 결과를 보면 토양 중 구리.납.카드뮴 오염이 기준을 초과했고 갱내수의 카드뮴 오염도 매우 높았다. 이처럼 오염원이 확인됐다면 주변 농작물이나 식수를 수십년간 섭취해 온 주민들의 건강피해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이 당연한데, 주민들을 상대로 건강피해 조사나 노출 평가는 실시되지 않았다. 물.공기.토양을 대상으로 오염물질 관리에 치우치다 보니 정작 궁극적 목적인 국민 건강은 뒷전으로 밀리게 됐던, 환경정책의 허점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주요 원인이다.

지금까지 환경문제로 인한 건강피해 사건이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민간단체에 의해 문제가 제기됐다. 주민들이 환경문제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그런 민원을 처리할 정부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도 오랫동안 질환을 앓아오다 결국 환경단체를 찾게 됐고, 마창환경연합 수질환경센터가 자비를 들여 조사했다는 것이다. 재정도 열악한 시민단체가 주민들을 위해 환경피해 조사를 하고, 정부는 그 결과를 폄하하거나 부인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노동부에서 노동자들이 제기하는 직업병 문제를 확인해주는 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환경부의 소극적 자세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전년도에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일을 하기 어렵다고 변명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환경문제로 인한 건강피해가 토목공사처럼 전년도에 미리 계획을 세워놓았다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이런 사태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가 아닐까 싶다.

소각로 건설이나 수도관 교체에는 수천억원씩 투입해도 환경문제로 인한 건강피해 사건에는 자체 예산을 쓰지 않는 것이 환경정책의 현실이다. 폐금속광산 주변의 토양오염 문제만 해도 방지사업비로 1995년부터 2003년까지 22개 광산에 350억원을 투입했지만 주변 주민들의 혈중 중금속 검사라도 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다. 이런 환경행정을 어느 국민이 이해할 것인가.

이번에 문제가 된 지역에 대해선 정확한 환경오염 실태와 피해 범위 확인을 위한 역학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카드뮴 중독 의혹이 제기됐다고 해서 조사대상을 카드뮴만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과거 환경부 조사에서도 구리.카드뮴.납.크롬 등의 중금속이 토양이나 농작물에서 높은 농도로 검출되는 등 다양한 복합오염의 가능성이 큰 지역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민 피해와 폐금속광산으로 인한 환경문제를 확인하는 자세로 접근해야지, 주민이나 환경단체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태도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길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폐금속광산이 고성군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정부 자료도 인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오염이 확인된 지역에 대해서는 인근 주민들의 건강피해 가능성을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들의 지속적인 노출을 막기 위해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고, 오염이 심한 경우 농산물 경작을 제한하고 대신 보상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폐광산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수십년간 피해를 본 주민들의 희생을 보상하는 길이다.

장재연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아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