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규제완화 + 시장개입 자제 + 구조조정 가속 = 2기 경제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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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2기 경제팀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구원투수가 돼 달라”는 기대 속에 출발했다. 윤증현(사진左)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이끌 2기 팀은 강만수(右) 장관의 1기 팀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시장과의 일전을 불사하는 강공 일변도였던 정책운용 기조에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이는 윤 내정자의 평소 스타일과 연관돼 있다. 윤 내정자는 19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정당한 수단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는 10년간 왜곡된 세제를 자신의 재임 중 모두 바로잡겠다고 나섰던 강 장관과 대조적인 대목이다. 강 장관은 징벌적 세금인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로 적잖은 홍역을 치렀다.

반면 윤 내정자는 시장과의 소통과 국민적 합의를 중시하는 만큼 강만수 경제팀이 보여준 몰아치기식 정책은 줄어들 것 같다. 표현은 완곡하더라도 필요한 정책은 집요하게 추진하는 방식이 예상된다. 윤 내정자는 금감위원장 재임시절 18년 난제였던 생명보험사 상장 건이나 LG카드 사태 처리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잡음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감세와 규제완화를 골간으로 하는 ‘MB노믹스’의 원형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책의 디테일엔 상당한 변화가 예견된다. 외환정책에 있어 시장 개입이 줄어들 전망이다. 윤 내정자의 스타일도 있지만 외환시장의 급한 불이 꺼진 측면도 있다. 게다가 2007년 국제금융국장 시절 구두개입도 자제했던 허경욱 재정부 1차관이 외환정책 라인에 복귀한 것도 시장의 자율 조정기능이 보다 존중될 것임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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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강만수 장관이 최우선 가치를 뒀던 경상수지 방어가 뒷전으로 밀려난다고 보긴 어렵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제는 변화 폭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강만수 장관이 대대적인 감세와 굵직한 세제개편을 마무리지어 놓았기 때문이다.

2기 경제팀이 국민적 합의를 중시하지만, 발등의 불인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은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2기 경제팀에는 수십 년 동안 은행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간섭이 싫다는 이유로 시중은행들이 기피하고 있는 은행 자본확충 작업도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특히 ‘내 코가 석자’라는 이유로 기업과 가계 대출을 꺼리는 금융권 관행에 대한 수술이 예상된다. 진동수 신임 금융위원장은 20일 “은행들이 어려운 처지이지만 외환위기 때에 비하면 중소기업을 지원할 여력이 크다”고 말했다. 관료사회는 외환위기 시절 금융권의 대출기피로 인한 줄도산을 겪은 윤 내정자의 경험을 주목하고 있다. 예컨대 1997년 은행들이 마음대로 기업 부도를 내지 못하게 하는 부도유예협약은 윤 내정자의 작품이다.

기업 구조조정의 경우 퇴출보다 지원에 비중을 둔 ‘살리기 위한’ 구조조정 원칙이 크게 흔들릴 것 같지 않다. 다만 기업부실 판정 시스템은 정교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진 금융위원장은 수출입은행장 시절 “실물부처가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부동산정책은 규제완화 기조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장은 “윤 내정자가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시절 일본의 자산 디플레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면서 “부동산 정책의 우선순위를 자산 디플레 방지에 둘 것”이라고 말했다. 윤 내정자가 금감위원장 때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도입한 것도 부동산 값 폭락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이었다고 양천식 전 수출입은행장은 전했다.  

이상렬·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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