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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105. 내가 만난 사람-앤 공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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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울올림픽 때 필자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한 앤 공주(右).

 영국 왕실의 앤 공주는 IOC 위원이자 국제승마연맹 회장이어서 나와 만날 기회가 많았다. 1980년대 중반 아버지 필립 공으로부터 승마연맹 회장을 물려받은 앤 공주는 회장으로서 처음 관장하는 서울올림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승마선수 출신인 앤 공주는 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 영국 대표로 출전했다가 낙마하는 바람에 뉴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당시 한국은 승마경기를 잘 몰랐다. 서울올림픽조직위도 어쩔 줄 몰라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서울올림픽조직위 제1부위원장인 내가 국제관계와 대회운영을 총괄할 때 앤 공주가 방한했다. 내가 롯데호텔에서 주최한 만찬에서 앤 공주가 인사말을 했다. 앤 공주는 연맹 감독관 40명을 서울로 파견해 경기장 준비, 말 통관검역, 수송, 경기운영 등을 도와주기로 했다. 잠실주경기장에서 폐회식 직전에 열린 종목이 바로 승마 장애물경기였다.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폐회식을 하기 위해 신속하게 철거하는 것이 더 큰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을 국제승마연맹이 직접 도와줘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앤 공주는 서울올림픽 직전인 88년 2월 캘거리 겨울올림픽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됐으며 곧 영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앤 공주는 전통적인 올림픽 이념을 신봉하는 사람이어서 사마란치 위원장의 방침에 반대하는 의견을 여러 차례 내놨다. 당연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마란치는 93년 총회 때 앤 공주 면전에서 승마 세부종목 중 2개를 올림픽종목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그때 내가 앤 공주를 거들었으나 사마란치가 듣지 않았다.

영국 왕실은 상징적인 존재지만 사회·체육·문화·자선 등 여러 분야에서 솔선수범한다. 앤 공주는 아동구호기금을 만들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는 일도 열심히 한다. 자기에게 점심 살 돈이 있으면 그것을 아동구호기금에 기부하라고 할 정도다.

서울 총회 때 내가 IOC 집행위원에 출마했다고 앤 공주에게 말하니 “나는 왕족이다. 나에게 로비하면 안 된다”고 정색을 한다. 그냥 친구로서 알려주는 것이라 하니 그제야 웃으며 “알았다”고 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재혼한 신랑과 함께 왔는데 무척 행복한 모습이었다. 초대한 사람 중에 IOC 위원은 나와 영국의 리디뿐이었다.

앤 공주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은 67년 배의환 대사를 수행해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했을 때 처음 만났다. 버밍엄 궁의 의전장이 주의할 점을 말해줬다. ‘여왕이 말을 걸기 전에 먼저 말하지 말 것’ ‘묻는 말에만 대답할 것’ ‘악수할 때 너무 세게 잡지 말 것’ ‘알현을 끝내고 나올 때 뒤돌아보지 말 것’ 등이었다.

93년 버밍엄 IOC 총회가 열렸을 때 다시 만났는데 하이톤의 독특한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서울을 방문했을 때 미동초등학교에서 어린이태권도 시범을 보고 기뻐하던 모습도 생생하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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