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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반환>下. 중국.미국 지분싸고 신경전 (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존 베델이 1637년 4척의 무장상선을 이끌고 중국 광둥(廣東)성 주(珠)강 하구에 도착,포격전으로 인사를 나눴던 중.영간 갈등이 3백60년이 흐른 홍콩반환 마지막 한달을 남겨놓고도 홍콩상공을 맴돌고 있다.영국은 홍콩반환을 위해 중국과 연합연락소조(JLG)를 85년 설립했다.이 JLG를 통해 그동안 양국은 ▶종심법원 설치▶군용토지 이전문제▶해방군의 홍콩진주 일정▶신공항 건설등과 같은 굵직한 안을 처리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주권 이양식의 세부절차 문제를 비롯,홍콩정부의 자산이전,홍콩인의 거류권등 여러문제들이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못한채 차기 홍콩특별행정구(SAR)정부에 부담을 안기고 있는 실정이다.중.영 갈등의 최대 피해자는 SAR정부의 초대행정장관인 둥젠화(董建華)다.

특히 최근엔 영국측이 반환을 몇년 앞두고 선심성(?)으로 개정해 놓은 공안조례와 사단조례등을 개정이전의 상태로 돌려놓으려다가 홍콩인들의 집중적인 성토를 받아 정식 취임에 앞서 인기가 급락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그러나 홍콩문제를 둘러싼 진짜 정치다툼은 이제 중.영간이 아닌 중.미로 옮겨붙고 있다.

그만큼 최근 중.미간의 기류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미국이 반환후의 홍콩문제에 관해 관심의 차원을 넘어선 개입의지를 점차 노골화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미 홍콩내 친중국 매체등을 동원해 미국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홍콩문제에 관한 중.영 마찰이 이젠 중.미 마찰로 전이된 양상이다.미국은 지난 84년 홍콩반환에 관한 중.영 공동성명이 체결될 때만해도 한낱 방관자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했다.그러던 미국이 홍콩문제에 깊이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서면부터다.

미국 의회는 92년 홍콩내의 민주화와 홍콩문제 개입의 합법화등을 노리는'홍콩정책법안'을 통과시킨데 이어 지난해엔 이를 수정 보완,미대통령이 직접 반환후의 홍콩 자유와 법치실현을 감독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3월12일,미의회는 한발 더 나아가 반환후 홍콩의 고도자치권과 홍콩내 미국의 정치.경제적 이익이 손상받게 될 경우 미국 정부가 이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는'홍콩반환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지난 1년동안에만 홍콩을 다녀간 미의원이 1백명을 넘어섰다.

뿐만 아니다.미상원의 외교위원장이 중국측에 의해 탄생된 홍콩 임시입법회 위원들의 미국방문을 금지시키자고 제안하는가 하면 공화당의 피터 의원은 반환후 중국당국에 의해 탄압받을 것이 뻔한 2천여 홍콩기자들을 위해 그들에게 미국입국 비자를 부여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95년 홍콩의 장래를'사망'이라고 표현했던 포브스 잡지의 논조가 그대로 미국인들에게 투영되는 모습이다.특히 지난 4월말 클린턴 대통령이 중국측이 눈엣가시로 여기는 홍콩 민주당의 마틴 리(李柱銘)주석을 접견,중국측을 격분시켰다.홍콩내 친중파 인사들은 마틴 리를 과거 명(明)을 버리고 청(淸)에 귀의했던 우산궤이(吳三桂)와 견주어 아예'현대판 우산궤이가 되살아났다'고 비난의 목청을 높이고 있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사진설명>

미국 배 위에서 바라본 홍콩 빅토리아항의 전경.홍콩반환을 앞두고 미국은 반환후의 지분참여등을 노리고 홍콩에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해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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