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된 금융실명거래.자금세탁 방지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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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발표한'금융실명거래법'및'자금세탁방지법'은 지하자금을 양성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되 불법자금에 대해서는 엄단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정부는 법안이 그동안 당정협의를 거친 것이라며 6월 임시국회 통과를 자신하고 있다.

사실 자금세탁방지법이 통과되기만 해도 큰 성과다.당정협의 과정에서는 신한국당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

정부는 당초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일정금액 이상의 고액 현금거래를 국세청과 검찰에 통보토록 할 예정이었으나 막판에 한발 물러섰다.

불법정치자금은 자금세탁방지법을 통해 처벌되지만 떡값 형태의 정치자금은 처벌되지 않도록 한 것도 신한국당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자금출처조사가 면제되는 대신 내야하는 출자부담금도 당초 예상보다 낮아졌다.

그러나 금융실명제 보완과정에서 예금자 비밀보장 장치의 한 축이 슬그머니 무너졌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검찰및 세무당국이 수사나 과세목적을 위해 필요한 경우 금융기관에 기록.보존된 현금거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한 것. 지금까진 실명제관련 긴급조치에 따라 검찰이 금융거래 내용을 확인하려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가능했으나 이제부터는 수사상 필요한 경우 고액 현금거래의 입출금 당사자와 상대편,날짜및 액수등을 법원의'허락'없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예금자 입장에서 보면 일정액 이상을 현금으로 거래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자신의 계좌에 접근해 수사망에 올려놓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비밀노출에 따른 심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도 검찰이 금융기관에서 금융기록을 직접 보려면 대배심으로부터 일종의 영장을 발부받아야 할 뿐 아니라 재무부에 보관된 금융거래 기록을 볼때도 재무부장관에게 서면으로 요청토록 해 예금자 비밀보장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금융기관 직원들은“지금까지도 법원의 영장은 형식적인 요건일뿐 검찰은 보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들춰봐 왔다”며“영장조차 없이 보게 한다면 예금자 비밀은 거의 노출되는 셈이나 다름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정경제원의 한 관계자는“불안감을 느끼는 예금자들이 앞으로 현금 대신 수표사용을 늘려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전망했다.

한편 금융기관이 기록을 보관해야 할 고액 현금거래가 얼마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그 기준 아래의 현금거래는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1만달러 이상 현금거래를 국세청에 통보하도록 하자 9천달러대의 입출금이 갑자기 늘어났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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