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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로니 ‘고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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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이탈리아 나폴리 북쪽의 스캄피아. 당국의 사용불가 처분이 내려진 레벨레 공영 주택단지에 있는 로렌조 리푸랄리의 아파트에서는 암모니아 냄새와 싸구려 솔잎 향 방향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큰 몸집에 두툼한 손,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리푸랄리는 좁은 거실 한가운데 놓인 탁자 앞에 앉아있다.

On the Streets of 'Gomorrah' #범죄·마약·가난에 찌든 나폴리 교외 마을은 영화보다 더 끔찍하다

열네 살 된 그의 딸 아나가 흰색 플라스틱 컵에 에스프레소와 생수를 내왔다. 실직자인 리푸랄리는 나폴리 범죄조직의 이야기를 그린 새 영화 ‘고모라(Gomorrah)’의 불법복제판 CD를 하이테크 스테레오 플레이어에 넣은 뒤 빨리 감기를 눌러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틀었다.

와이드스크린 TV에 리푸랄리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과 똑같은 풍경이 나타나고 사운드트랙에서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푸랄리는 멈춤 버튼을 눌러 화면을 고정시키더니 미소를 지으며 “저기 내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화면 뒤쪽에서 레벨레 단지의 아파트 위층에서 로프에 매달려 내려오는 커다란 소파를 받아 땅에 내려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리푸랄리가 소파를 내려놓는 동안 적대 관계에 있는 두 가문의 소년 두 명이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서로를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 원수지간이 된 자신들의 처지를 이야기했다. 그 장면을 완성하기까지 몇 번이나 촬영을 했느냐는 질문에 리푸랄리는 껄껄 웃으며 “로프에 매달린 소파가 자꾸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예닐곱 번은 찍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대다수 사람과 마찬가지로 리푸랄리는 이 영화가 자신들의 모습을 어떻게 비추든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우쭐해 하는 듯했다. 영화의 바탕이 된 로베르토 사비아노(29)의 폭로 소설 ‘고모라’는 나폴리의 잔인한 범죄조직 카모라의 실상을 세계 독자들에게 폭로한 최초의 작품이다.

하지만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은 사람은 마테오 가로네 감독이다. 그는 범죄영화가 빠지기 쉬운 ‘폭력단원의 미화’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가로네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앞서 말한 두 소년과 리푸랄리, 그리고 그의 딸 등 현지 주민들을 영화에 출연시켰다.

그렇게 해서 그는 우범지대인 스캄피아를 비롯한 나폴리 교외 지역들의 실상을 그린 비극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에는 전 세계에 손을 뻗치는 카모라의 범죄 실상을 그린 다섯 개의 이야기 나온다. 마약·금품갈취·유독성 산업폐기물의 부실처리·위조·살인 등의 이야기다.

사비아노의 책은 세계적으로 3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그리고 영화는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지명될 듯하다. 12월 초에는 유럽영화상의 최우수 영화상과 감독상, 촬영상 등 다섯 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하지만 사비아노는 크리스마스 때까지 자신을 살해하겠다고 선언한 카모라의 추적을 피해 주정부에서 파견한 다섯 명의 경호원과 함께 이탈리아 곳곳을 옮겨 다니는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책과 영화가 성공을 거둔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하지만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는 로마에서 철저한 경호 속에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난 이제 더는 카모라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지금 그들에게 정말 위협적인 존재는 내 책을 읽은 독자들과 영화를 본 관객들이다.”

사비아노가 책 속에 묘사한 공영 주택단지는 그가 어린 시절 카살 디 프린시페의 공영 주택단지에서 살던 때와 달라진 게 없다. 그의 책은 카모라의 활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나폴리의 거리에선 여전히 해적판 영화가 한 편에 3유로에 팔린다. 또 마약 밀매와 살인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반마피아 경찰은 카모라를 구성하는 다양한 계파들이 적어도 사흘에 한 건씩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봄 이탈리아 정부는 병력 500명을 파견해 카세르타와 스캄피아, 그리고 카살 디 프린시페 근처에 무장 검문소를 설치했다. 하지만 카모라는 군인들조차 통과할 수 없는 자체 검문소를 설치해 이에 대항했다.

“이 정도는 흔한 일”이라고 사비아노는 말했다. “이곳에서는 설사 범죄자가 아니라고 해도 죄 없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살인이나 강도, 또는 마약 밀매 장면을 목격한다.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할 일들이다.”

‘고모라’에서 확실히 알 수 있듯 카모라는 세계 곳곳에 범죄의 손길을 뻗친다. 범죄의 종류와 방식도 매우 다양하다. 그들은 북유럽 회사들로부터 유독성 산업폐기물을 구입하고, 북미 대륙에 자금을 투자한다. 하지만 가장 돈벌이가 잘되는 사업은 국내의 코카인과 헤로인 밀매다.

이 조직의 마약 밀매 수입은 하루에 50만 유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레벨레엔 합법적인 상점은 없어도 마약 공장은 많다. 이곳의 아파트 중에 창문에 유리창이 남아있는 아파트는 절반이 채 안 된다. 포장도로는 곳곳이 파헤쳐져 있고 벽들은 허물어져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1980년 큰 지진이 발생한 뒤 나폴리의 가난한 이재민들이 이 단지에 몰려들어 버려진 아파트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1989년과 1993년 단지 전체에 사용불가 처분이 내려졌다. 이곳 주민 중 합법적인 거주자는 100가구뿐이고, 나머지 400가구는 무단거주자다. 그들은 마약 밀매로 공존한다.

심지어 현지 주민에게는 마약을 반값에 할인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주민 중에 마약 상용자는 드물다. 마약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근처의 허름한 창고와 지하 저장시설에서 국내외의 고객들이 엄청난 양의 헤로인과 코카인을 구입한다. 레벨레의 각 건물 1층에는 여성들이 운영하는 임시 마약 상점이 있다.

그들은 플라스틱 주사기가 가득 든 박스가 놓인 접이식 탁자 뒤에 앉아 주사기 하나에 1유로를 받고 판매하면서 동네 아이들에겐 초코바와 청량음료도 판다. 주사기를 구입한 고객은 헤로인을 살 수 있는 지하실로 안내된다. 그곳에서는 헤로인 1회분을 16유로에 판매하는데 현금만 받는다. 고객들은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사용한 주사기를 잔디밭에 버린다.

가끔 정장 차림으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레벨레를 찾는 고객도 있다. 그런 고객들은 지하실로 내려가지 않고 심부름꾼(대개가 10대 소년이다)을 통해 마약을 구입한다. [마약 상점 앞에는 몇 시간 간격으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가 와서 멈춰 서는데 마약 판매 수입금을 거둬가는 차량이다.

조직에선 절도나 횡령을 방지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수입금을 그때그때 거둬들인다.] 이 지역에서는 이런 지하실 사업이 성황이다. 정오 무렵이 되면 주차장에 자동차 20여 대가 모여들고 사람들이 마약 상점 앞에 줄을 선다. 또 늦은 오후에는 자동차들이 더 많이 모여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계단까지 이어진다.

이 동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버려진 주사기가 널린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고 논다. 또 생쥐가 득실대고 집 없는 개와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는 쓰레기투성이의 공터에서 축구를 한다. 정오 가까운 시각 여전히 회색 실내복 차림인 마리아 아마로(33)가 아파트 앞 계단을 빗자루로 쓸었다.

핑크색 벨로어 운동복을 입은 그녀의 세 딸은 아파트 안에서 바비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었다. 그녀는 ‘고모라’ 영화가 마음에 들었지만 가로네가 레벨레의 인간적인 측면을 더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곳에 오기를 두려워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사람들은 여기 오면 우리가 그들을 죽일 거라고 생각한다.”

전업주부인 아마로는 기자를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자신의 아파트로 안내해 커피를 대접했다. 레벨레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동네 분위기와는 딴판으로 개인 집 안팎은 매우 깨끗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쉴새 없이 플라스틱 바닥 깔개를 닦고 깨진 콘크리트 계단을 빗자루로 쓴다.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쓸고 닦는 습성엔 뭔가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듯했다. 창문에선 빛이 나고 바닥은 반짝이며 아이들의 옷차림도 아주 깔끔하다. 아마로의 이웃에 사는 마리아 모톨라(38)도 이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 덕분에 동네가 주목 받게 된 건 우리에겐 좋은 일”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의 현실은 영화 속 이야기보다 더 열악하다. 사람들은 이런 실상을 이탈리아의 수치로 여기는 듯하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나폴리를 방문할 때도 레벨레엔 절대 안 온다.” 모톨라의 남편은 감옥에 있다. 그녀는 남편이 왜 옥살이를 하게 됐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경찰관들은 다른 사람들을 겁주려고 사람들을 감옥에 가둔다”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내일은 사정이 좀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에서 스패너와 와셔(볼트나 너트로 물건을 죌 때 너트 밑에 끼우는 얇은 쇠붙이)를 한 움큼 들고 있는 빈첸조 스페리노와 마주쳤다. 그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영화를 볼 필요가 있겠느냐?”고 그가 말했다. “실생활에서 매일 보는 광경이다. 정부는 이곳을 이렇게 지저분한 범죄의 소굴로 방치한 걸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그때 마침 검은 운동복을 입은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걸어오더니 주사기를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스페리노는 그 남자가 다시 비틀거리며 멀어져 가자 스패너를 들어 그 남자의 머리를 치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내리쳤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 마약 중독자 한 명이 사라진다. 그렇게 한 명씩 없애버려야 한다.”

그는 아홉 살과 여덟 살, 여섯 살인 자신의 아이들이 걱정된다. 자녀를 향한 그의 마음은 다른 부모들의 마음과 똑같다. “난 그저 애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랄 뿐 더 바라는 것도 없다.” 요즘 같은 경제위기에도 카모라의 사업은 성황이다. 사비아노는 “카모라는 남부 이탈리아에서 아직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유일한 조직이며 그들의 사업은 여전히 재미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나폴리는 몰락했지만 카모라는 여전히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 수익은 많은 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희생시킨 대가로 얻어진다.”레벨레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유럽의 헤로인 수도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웃으며 논다. 아마로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은 더 나은 세상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하다. 어른들은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모른척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현실은 영화만큼 나쁘지 않다. 그보다 더 나쁘다.”

BARBIE NADEAU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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