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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구태 답습한 새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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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박승희 정치부 기자

17대 국회는 변했을까?

바뀐 게 있긴 있다. 첫 본회의가 열린 지난 5일 본회의장 모습은 울긋불긋했다. 점퍼 차림을 한 의원(민노당 단병호 의원), 개량한복을 입은 의원(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 등이 있었다. 옷차림만큼 행동도 분방했다. 경위의 제지를 받긴 했지만, 종이컵을 들고 입장한 의원에서 휴대전화를 걸던 초보의원까지. 검은색 양복 일색의 옛 국회와는 달랐다. 그러나 17대 국회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10시에 열려야 할 본회의는 오후 10시10분에야 열렸다. 그리고 밤 12시가 다 돼 끝났다. 의원들은 12시간 동안 대기하다가 1시간 동안 겨우 특위 구성안에 찬반 표결을 하고 새 국회의장을 뽑았을 뿐이다. 생산성을 따진다면 낙제점이다.

상생과 변화를 내건 17대 국회가 첫인상을 구긴 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자리다툼 때문이다. 국회부의장 두 자리 중 한 자리를 한나라당이 차지한다는 데는 합의했지만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주장이 서로 달랐다. 열린우리당은 책임정치를 내세워 여당 몫이라고 한 반면, 한나라당은 16대 당시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비교섭단체에 국회부의장을 준 전례를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이 와중에 원내 수석부대표 간 합의문에 '원 구성 협상과 관련해 한나라당 의견을 존중한다'고 명시한 대목를 놓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협상 대표를 몰아붙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두 당이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비교섭단체인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안에서 볼모처럼 붙잡혀 있었다. 결국 국회부의장과 상임위원장 선출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오후 10시가 넘어 가까스로 열린 회의에서 "과거 국회는 정치적 야심을 가진 사람의 권력투쟁의 대리장으로 전락했지만 앞으로는 상생하는 국회를 만들자"고 했다. 그러나 이날 17대 국회 첫날을 지켜본 16대 국회로서는 '과거'로 매도된 데 대해 오히려 억울해 할 것 같다. 아침에 나와 밤 12시에야 본회의장을 나선 농민 출신 강기갑 의원은 "농사일에 아침 일이 반나절 일이란 말이 있는데 이게 뭐냐"고 소리쳤다.

이승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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