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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대신 닭'으로 끓인 떡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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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먹는 음식은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어느 지방에서나 빠지지 않고 먹는 것이 흰떡국이다. 멥쌀가루 찐 것을 찰기가 생기도록 떡메로 치고 조금씩 떼어 손으로 비벼 둥글고 길게 문어발 같이 늘인 것을 동전만하게 썰어 육수에 넣고 끓인다. 이렇게 끓인 떡국은 먼저 차례상에 올리고 온 가족이 함께 먹는 새해의 첫끼에 각자 한 그릇씩을 먹는다. 떡국 한 그릇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어른들 말씀에 배가 불러도 열심히 그릇을 비웠던 기억이다.

현재 우리가 먹는 떡국의 원형은 중국의 밀가루 떡국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떡국은 18세기말 중국에서 유래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떡국을 먹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 유리왕 이전으로 보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펴낸 <한국세시풍속사전>을 보면 '중국에서 밀가루를 반죽해 둥근 막대모양으로 만든 후 얇게 썰어 건조시켰다가 밀가루 떡국을 끓여먹었는데 한반도에서는 밀가루가 귀해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떡을 만들었던 것이 가래떡의 시초가 됐다.'고 나온다.

사용하는 떡과 끓이는 방법은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쌀농사가 적은 북쪽 지방에서는 부족한 떡을 대신해 만두를 만들어 넣은 떡만두국을 먹는다. 개성지방에서는 가래떡 대신 누에고치 모양을 닮은 조랭이떡을 넣은 떡국을 먹고 충청도지방에서는 '생떡국'이라 하여 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떡국을 끓여먹기도 한다. 조선시대 왕가에서 먹던 떡국 역시 일반적인 떡국과는 달랐다. 더욱 쫄깃한 식감을 위하여 맵쌀과 찹쌀을 섞어서 만든 가래떡을 사용했고 숟가락으로 떠 먹기 쉽도록 어슷썰기 대신 직각으로 동그랗게 썰었다.

떡국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맛있는 육수다. 전통적인 떡국의 육수는 쇠고기와 꿩고기를 사용해서 담백하게 끓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꿩은 야생동물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쇠고기는 값이 비쌌다. 때문에 서민들은 그 보다 흔하고 가격이 싼 닭을 꿩대신 사용했다. '꼭 적당한 것이 없을 때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를 보고 '꿩대신 닭'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바로 이렇게 끓인 떡국에서 나온 말이다. 예전에야 꿩이 없어 아쉬운 마음에 닭이라도 대신한 것이었겠지만 이제는 맛과 영양을 위해 닭으로 육수를 낸 떡국을 만든다. 올해는 예전과 다른 특별한 떡국을 만들어 보길 원한다면 진한 닭육수와 닭고기 웃기가 올려진 삼계떡국을 끓여볼 것을 추천한다. 만들기도 어렵지 않다. 삼계떡국으로 떡국을 먹는 본래 의미인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고 덤으로 원기도 충전할 수 있으니 '꿩대신 닭'이 아니라 '꿩보단 닭'이라 해야 할 것 같다.

※ 삼계떡국(2인분)

영계1마리, 우유1/2컵, 물1200ml, 수삼1뿌리, 대추4개, 황기10cm, 마늘5개, 파 흰부분10cm, 떡국떡3컵, 소금/후추 약간씩

1. 영계는 우유에 30분간 재워두었다가 물로 헹구고 껍질을 벗긴 뒤 꽁지부분의 지방은 가위로 잘라낸다.
2. 냄비에 물, 영계, 수삼, 황기, 대추, 마늘, 파 흰부분을 넣고 중불에서 끓인다.
3. 닭고기가 익으면 건져서 살을 발라내고 뼈는 다시 넣어 5분 더 끓인다.
4. 끓인 육수는 체에 걸러 냄비에 도로 붓는다.
5. 육수에 떡국떡을 넣고 끓이다가 떡이 물 위에 떠 오르면 발라놓은 살을 함께 넣고 소금, 후추로 간한다.

김은아 칼럼니스트 eunahstyl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