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이후 정치권 변화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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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재.보선 이후 정치권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여권은 선거참패에 따라 선거인책론과 향후 개혁일정에 대한 차질이 예상되는등 후폭풍을 불러올 전망이다. 야권은 선거승리로 국회 과반수의석을 확보한 여권 견제에 한층 무게가 실리게 됐다.

여권은 이번 선거에서 영남권 교두보를 마련, 전국정당화하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더구나 선거참패로 향후 치뤄질 국회의원 재선거에서의 승리도 장담할 수 없어 자칫 어렵게 확보한 국회과반수 의석확보도 무산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물론 이번 선거 투표율이 28%에 그쳤고 4개 지역에 국한된 선거였다는 점에서 민의(民意)를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여권의 반론도 있다. 거여견제 심리가 작용한 것 뿐이라고 폄하하는 해석도 있다. 총선승리후에 여권에서 보여줬던 권력투쟁, 개혁국회 논란, 때이른 승리에의 도취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야권의 여권견제 필요성을 일으키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는 여권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기엔 너무나 분명한 민의를 보여준다. 열린우리당이 총력을 기울였던 부산시장과 경남지사 선거는 총선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득표율로 참패를 당했고 절대 우위를 유지한다던 전남지사 선거에서도 큰 표차로 졌다. 가장 객관적인 민심을 보여준다는 수도권에서도 큰표차로 야권에 패배했다. 이는 민의가 어느 특정지역에 국한돼 있지 않고 전국적으로 여권을 질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반증이다. 특히 재야 운동권과 386 당선자들의 성숙하지 못한 언행과 아직도 운동권식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국민들의 개탄이 이번 선거결과에 묻어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마디로 이들의 국가경영에 대한 불안이 전통적 보수심리로 민의를 돌리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여권은 일단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히 수용해 향후 국정운영에 반영해 나갈 것'이라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당장 처리해야할 현안문제들의 처리가 그렇게 쉬워보이진 않는다.

우선 영남지방 선거를 책임졌던 김혁규(金爀珪) 전 경남지사의 총리 지명 문제부터 심각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김 전 지사의 총리지명에 반대해온 야권은 이번 선거결과를 들이대면서 '지명 불가론'을 강하게 설파할 것으로 보이고 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천명으로 잠복해있던 여권내의 '김혁규 반대론'도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또 신기남(辛基南) 당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당내 책임론 공세에 직면하면서 홍역을 치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지도부 책임론이 심각하게 불거지지 않는다 해도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설득력을 얻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이 경우 논란을 빚어왔던 당.청관계도 원점에서 재검토되면서 노 대통령의 당 직할체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즉 , 현 당권파인 '천.신.정' 그룹이 1선에서 후퇴하거나 세력이 주춤하는 대신, 당내 친노 직계그룹의 영향력이 커지는 등 여권내 권력구도도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반면 한나라당은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지난 총선에서 제1당 자리를 뺏긴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 압승을 통해 침체된 당 분위기를 일신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또한 '차떼기 정당', '부패정당'의 이미지를 벗고 대여 견제세력과 수권정당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자리매김해 나갈 수 있게 됐다.특히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총선전 '박근혜 바람'에 이어 이번 재.보선에서도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를 재확인하면서 기세를 이어나가 내달 중순께로 예정된 전대에서의 압승이 예상된다.

지난 총선 대패로 당이 존망의 위기에 처해있던 민주당은 이번 전남지사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리함에 따라 재기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당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됐던 합당론이나 탈당론도 어느 정도 잦아들면서 한화갑(韓和甲) 대표 체제도 상당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뉴스센터, 연합뉴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재보선 결과에 대한 반응

선거에 참패한 열린우리당은 6일 오전 참담한 분위기였다. 의원 대부분은 말을 꺼렸고 그나마 선거에 대한 의견을 말한후 기자에게 익명을 요구했다. 다음은 열우당 의원들이 익명을 전제로 한 이번 선거에 대한 반응이다.

A의원:"총선 승리 이후 당이 여러가지로 부족했던 것이사실이다. 그러나 책임론이 나온다면 모두의 책임이다. 무슨 지도부 사퇴냐. 그거야말로 무책임한 소리다. 당이 하나도 정비가 안돼 있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 애초에 정동영-김근태 체제가 유지됐어야 한다. 총선 끝나고 당을 정비해야 하는데 당과 아무런 논의없이 대통령과 한 번 만나고 와서 대권수업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장관 가야 하는건가. 꼭 개각해야 할 사유가 있는것도 아닌데. 다시 말하지만 지금 지도부 책임론 꺼내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B의원:"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표를 준 다수 국민들의 뜻은 개혁을 확실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총선 이후 그런 모습 보여주지 못했다. 개혁후퇴 인상 준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아파트 분양가 문제 등이 아니고 열린우리당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신뢰 못준게 사실이다.이번 참패를 계기로 보다 확실하게 개혁쪽으로 방향설정이 필요하다.지도부 인책론은 그런 얘기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또다른 변수가 있다. 바로 기간당원 중심으로 당을 제2창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헌당규 개정작업과도 맞물려 있다.지난번 창당은 사실상 총선용 창당이었고 이번이 백년가는 정당 만드는 진짜 창당이다.이걸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 판단이 잘 안된다.나는 원래 조기 전대에 반대했다.지금은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C의원:"아무래도 정책혼선이 여러가지 있으니까 국민들이 안정적 사회환경 바라는 입장서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가지 난맥이 있었던게 사실 아니냐. 지도부 인책론 등 대책에 대해서는 내일부터 의원들과 심도 있게 논의해보겠다.확실한 것은 당이 국민들에게 뭔가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무엇을 충족시켜야 하는지를 논의해봐야 한다."

D의원:"참패 원인은 크게 4가지가 있다.첫째 국민이 열린우리당이 돼면 뭔가 좋아질 것 같다는 기대를 가졌는데 막상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둘째, 열린우리당의 총선 압승에 대한 견제심리와 야당 동정론도 있다. 셋째,탄핵도 해결됐고 국민이 꼭 열린우리당을 찍어야만 할 이유가 없었다.넷째, 투표율이 낮아 젊은층의 참여가 적었다.무엇보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승리에 도취해 있었다. 너무 오만했다.'열린우리당'이라고 하면 다 찍어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틀렸다.

조기 전대에는 반대한다. 왜 책임이 지도부에만 있나. 지도부는 전략전술에서 책임이 있을진 몰라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가 나눠져야 한다.몇몇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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