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왜 박정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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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요즘 전율을 느낀다.두가지 현상 때문이다.하나는 과거 적당히 묵인됐던 정치권의 위법적 관행이 앞으로는 더 이상 발붙이기 힘들게 됐다는 점이다.다른 하나는 비극적 종말을 맞아 잊혀졌던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우리 가슴에 다시 파고들어 되살아나는 조짐 때문이다.

후자부터 말하면 이렇다.朴대통령의 비서실장을 9년3개월이나 지냈던 김정렴(金正濂)씨가 朴대통령의 치적을 쓴'정치회고록'이 중앙일보에 발췌 연재되자 독자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수많은 독자들이“연재를 왜 벌써 끝내느냐”고 가슴 찡한 내용을 전화로,팩스로 보내왔다.물론 이 연재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소수였다.

독자의 반응은 그의 시대가 이룩해놓은 치적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그런 치적을 낳게 한 그의 혜안(慧眼)과 용단,불도저식의 밀어붙임,챙기기의 철저함,자기관리의 엄정함에 모두들 찬탄을 보냈다.발췌 연재된 金씨의 글이 박정희시대의 어두운 그늘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더 호의적 반응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그 시대라고 해서 朴대통령의 주변과 측근들의 발호,부정부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그의 인간적 허물도 있었다.독재정치는 국민을 질식시켰다.인권탄압은 심했다.언론은 재갈이 물렸고 안기부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기관이었다.'남산'(정보부 별칭)이란 말만 들어도 소름 돋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朴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느낀 주류는 그 시대의 밑바닥 인생에서부터 정치적 억압으로 희생을 강요당했던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그 사실은 음미할만 하다.

이런 현상과 함께 나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차남 현철(賢哲)씨의 구속사태를 눈여겨 본다.엄밀히 말하면 현철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표적수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라고 나는 본다.한보수사에서 그의 개입혐의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자 검찰은 이른바 별건수사로 그를 옥죈 것이다.경위야 어떠하든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단죄받는 시대까지 진전됐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그 뿐인가.어느 사이 金대통령이 한보의혹의 몸체라는 비판이 공공연히 제기돼 그 연장선상에서 92년 대선자금의 공개가 다그쳐지는 상황이다.가위 혁명적 분위기라 아니할 수 없다.87년 6.10 시민항쟁이 희생자를 낸 가투끝에 얻어진 민주화의 진전이었다면 이번엔 그런 외형적 대가없이 일구어낸 조용한 시민혁명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현정부 초기의 사정(司正)이 표적수사라고 비난받았지만 그들이 떵떵거렸던 당시엔 논란조차 일지 않았던 사항이었다.87년 집권당의 대선자금은 92년 경우와 막상막하였지만 그냥 넘어갔다.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현직대통령의 대선자금을 준열히 추궁하고 그에 기대어 발호한 아들을 단죄하고 있다.과거 적당히 넘어갔던 위법적 관행이 드디어 통하지 않은 세상을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다시 돌아가“왜 박정희인가.”나는 그의 허물을 뛰어넘는 공적(功績)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우리를 가난으로부터 해방시킨 그의 치적,바로 그것이다.金대통령은 여기에서 배워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金대통령은 92년 대선자금의 규모와 씀씀이의 유형을 가능한한 사실에 가깝게 털어놓고 국민에게 진솔한 용서를 구해야 한다.金대통령은 대선자금 규모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고 둘러댈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기 위해 지금 죽는 길을 택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조완규(趙完圭)전서울대총장은 그 길을“통치권자의 용기”라고 촉구했다.

그래서 金대통령이 돈선거로부터 이 나라를 해방시키는 주춧돌을 놓는다면 재임시 아들의 구속조차 감내한 것까지 합쳐 후세들로부터 무능한 대통령이었다는 평판에서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지도자로 되살아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金대통령이 몇개월간의 옹색한 삶에 연연하지 않고 朴대통령처럼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의 가슴속에 환생하는 길을 택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 이수근 편집부국장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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