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 주인도 줄쳐가며 읽는 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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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기구독자는 전세계에서 6000명, 광고는 싣지 않음, 기사 내용은 박사급(PhD level)을 추구함. 1년 4차례 발간에 구독비는 48달러. 겉으로 봐서는 지속가능이 영 불가능해 보이는 한 음식 관련 계간지가 전세계 소수 미식가들이 인정하는 잡지로 자리잡았다. 미국 버몬트 주의 한 고집쟁이 남성이 발간하는‘음식 예술(The Art of Eating·사진)’얘기다. 최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음식 예술’이 세계의 진지한 미식가들 사이에 컬트로 부상했다며 이 잡지를 20년간 발행해온 편집자 에드워드 베르를 소개했다.

FT는 미국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읽는 것으로도 모자라 주요 기사를 오려내 지인들에게 팩스로 보내줄 정도로 이 잡지에 열광한다고 보도했다. 뉴욕 맨해튼의 권위있는 요리책 서점 ‘키친 아트 앤 레터스’에서는 음악 매니어가 LP판을 사듯 이 잡지의 과월호를 사가는 독자들도 적지 않다는 보고다. 소수에 불과하지만 ‘음식 예술’은 미국을 넘어서 영국·호주·뉴질랜드에서도 미식가들이라면 알고 있을 정도로 명성을 자랑한다.

FT는 ‘음식 예술’을 소개하면서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무첨가 원칙을 고수한 요리에 비유했다. 1986년 8쪽짜리 레터 형식으로 발간하기 시작해 이만큼 성장해왔지만 ‘무광고’ 원칙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또 있다. 인터넷에는 과월호 목차 외에는 내용도 공개하지 않는다. 게다가 남성잡지 ‘GQ’ 기자면서 음식 비평가인 앨런 리치먼 등 세계에서 손꼽히는 음식 비평가 등 전문가를 필자로 모신다.

책 내용도 남다르다. 와인 리뷰부터 식당평과 요리법 등을 두루 다루지만 식재료 탐구에 가장 큰 공을 들인다. ‘좋은 음식은 좋은 재료에서 나온다’ ‘가장 좋은 요리는 가장 적게 손을 대는 것’이라는 음식 철학 때문이다. 이를테면 ‘음식 예술’에서는 ‘소금’을 주제로 한 기사에만 16쪽 넘게 할애했다. ‘돼지고기’ 편에서는 필자가 한 달간 아이오와, 캘리포니아 목장을 두루 취재하며 어떤 사료를 주고, 어떻게 도축하고, 어느 경로로 도소매 유통과정이 이뤄지는지를 취재해 30쪽에 달하는 기사로 소개했다.

이 잡지를 만들어온 베르는 음식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전통’ ‘소박함’ ‘신토불이(식재료의 토양과 환경을 중시)’로 요약하면서 “관점이 없는 잡지는 독자에게 아부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독자라며 “광고를 싣지 않는 것도 기업들의 입김 탓에 기사를 손상시키고 싶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독자 수가 적은 것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소수의 독자 덕에 오히려 개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며 “읽는 이에게 가장 실용적이고 유용하며, 최고 품질의 정보를 주는 게 목표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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