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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덩어리 폐형광등, 세탁소 발암 폐기물…재처리 않고 마구 버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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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한 고물상이 간판에서 나온 형광등을 자루에 담아 깨뜨리고 있다.

맹독성 수은 증기를 담고 있는 폐형광등과 발암물질 벤젠 등이 포함된 세탁소의 유기 용제가 마구 버려지고 있다. 폐기물 수거가 관련 단체에 맡겨져 있는 데다 영세한 업체들이 재활용에 드는 비용 부담을 피하는 사이 시민들은 오염에 노출되고 있다.

◇세탁소에서 발암물질 방치=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N세탁소. 최근 이 세탁소에 단속을 나간 구청 직원들은 세탁소를 들어서는 순간 일제히 코를 쥐어잡아야만 했다. 드라이클리닝용 세제로 쓴 뒤 버리기 위해 모아둔 솔벤트와 퍼클로로에틸렌 찌꺼기의 악취 때문이었다.

이 찌꺼기에 들어 있는 벤젠과 퍼클로로에틸렌은 발암물질이다. 연세대 산업보건연구소의 김치년 교수는 "퍼클로로에틸렌은 공기 1㎥당 34.2g만 포함돼 있어도 쥐가 8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 정도로 독하다"고 말했다. 세탁소 주인 황모(46)씨는 "솔벤트 찌꺼기를 밀폐용기에 보관해야 하지만 이를 따르는 업소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부피를 줄여 수거비를 아끼려면 찌꺼기를 볕에 말려야 한다.

보통 한 세탁소에서 나오는 찌꺼기는 1년에 30~150kg. 세탁업중앙회가 수거 차량 아홉대로 전국을 돌며 kg당 700원을 받고 수거해 간다. 그러나 지난해 전국 세탁소 4만여곳 중 수거에 응한 곳은 1만4000여곳에 불과하다.

세탁업중앙회의 강창헌 사무총장은 "정기 수거에 참여하는 업체들 숫자가 갈수록 줄고 있다"며 "영세한 세탁업자들이 폐기물 수거.비용 부담과 교육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형광등은 수은 덩어리=지난 2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단지 내 상가. 고물상 이모(45)씨가 못쓰게 된 간판 속에서 50여개의 형광등을 꺼냈다. 자루에 형광등을 담고 쇠몽둥이로 내리치자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하얀색 연기가 퍼졌다.

이 가스의 주성분은 수은 증기. 형광등 1개에 들어 있는 수은 증기는 25~30mg으로 토끼 한 마리를 즉사시킬 수 있다. 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 최재욱 교수는 "형광등 수은은 급성 중독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체내에 다량 흡수되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쓰시협)의 최근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1만8000여 간판업체가 버리는 형광등은 1년에 4000만개. 가정.공장.사무실 등에서 버리는 것이 약 1억개다.

그러나 한국형광등재활용협회가 지난해 재처리한 형광등은 1200만개. 한해 버려지는 1억4000여만개의 10%도 안된다.

간판 제작업자 이모(45)씨는 "구청에 수거 요청을 하면 깨지지 않게 분리해 가져오라고만 한다"며 "하루벌이도 빠듯한 상황에서 폐형광등 수거에 인건비까지 쓰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임장혁.김은하.이경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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