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잘 나가다 주저 앉은 벤처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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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올해 31세인 한메소프트 이창원(李昌元)사장.그는 대농그룹의 사장단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계열사의 최연소 사장이다.같은 나이의 샐러리맨들이 기껏해야 대리나 과장인 것에 비하면'출세'한 사람임에 틀림없다.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좀 다르다.애당초 그의 꿈은 한국최고의 벤처기업을 꾸리는 경영자. 한메소프트는 원래 89년 젊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전형적 벤처기업이었다.그러나 적자생존이라는 기업경쟁의 냉혹한 벽을 못 넘고 지난해 9월 대농그룹으로부터 자본금을 유치하고 계열사로 편입됐다.“그동안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저희는 상품개발 타이밍을 놓치면서 흔들린 경우입니다.저는 이'절반의 실패'가 주는 교훈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벤처기업이라고 해서 모두 황금알을 낳지는 않는다.모험성이 클수록 실패확률도 큰 것이 벤처기업의 속성이다.때문에 벤처기업으로 의욕적인 출발을 했지만 지금은 통념상 벤처기업 범주에서 벗어나 대기업에 흡수합병됐거나 계열사로 편입된 기업들의 사례는 미래의 빌 게이츠를 꿈꾸는 벤처 꿈나무들에게 나름대로 적잖은 교훈이 된다.

'한메타자교실'로 유명한 한메소프트는 90년대 초반까지 앞길이 창창한 젊은 기업이었다.92년부터 2년간 15억원 이상을 들여 개발한 워드프로세서'파피루스'는 이 회사 기술력의 정수였다.벤처기업답게 기술에는 자신있었다.개발을 시작한 92년만 해도 한글용 워드프로세서라고는'글'등 극소수여서 시장성이 높았다.그러나 94년 파피루스가 출시됐을 때는 10여종의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자본력이 취약한 한메로서는 결국 마케팅 한번 변변히 하지 못하는 부진을 겪다 대농그룹에 편입됐다.

“기술만 믿고 시장의 흐름을 냉정히 분석하지 못한 게 실수였다”는 李사장은 이 교훈을 밑거름 삼아 실패를 완전한 성공으로 돌려 놓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때 국내 사운드카드시장을 휩쓸었던 옥소리의 김범훈(金範勳.38)사장.그는 95년 매출 6백억원을 바라보던 잘 나가는 옥소리를 한솔그룹에 넘겼다.金씨는“벤처기업 경영을 위해서는 개발자금.시설자금 외에 운전자금 마련에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벤처기업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기도취라고 지적한다.“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시장에 뿌리를 내리면 외형은 매년 2배씩 성장합니다.그러나 문제는 매출이 커질수록 이에 비례해 운전자금도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외형이 커지다 보니 원자소리를 한솔그룹에 넘겼다.金씨는“벤처기업 경영을 위해서는 개발자금.시설자금외에 운전자금 마련에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벤처기업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기도취라고 지적한다.“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시장에 뿌리를 내리면 외형은 매년 2배씩 성장합니다.그러나 문제는 매출이 커질수록 이에 비례해 운전자금도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외형이 커지다 보니 원자재비.인건비등이 많이 필요해지는데도 성장에만 도취,운전자금 마련을 소홀히 해 꾸려나갈 힘이 달리면서 결국 회사를 처분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지난달 종근당으로부터 10억원의 자본금을 유치하고 계열사로 편입된 한국하이네트 임규태(林圭泰.40)기획실장도 같은 지적이다.한국하이네트는 지난 7년간 국내 경영정보시스템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앞길이 창창했던 기업.그는“운전자금을 포함한 장기적 자금조달계획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한때의 자금경색으로 흔들리는 게 벤처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월매출액의 3배 정도의 운전자금을 항상 마련해둬야 한다고 강조한다.인.허가와 관련한 관공서등의 지나친 권위주의도 벤처기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난해 한솔그룹에 인수된 모뎀생산업체 한화통신의 강경석(姜敬錫.45)전 사장은“세무서를 비롯한 관(官)의 간섭과 규제에 지쳐 회사를 대기업에 팔았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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