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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가장 큰 걸림돌은 농협 내 5개 노조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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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원철희(71·사진) 전 농협중앙회장은 1994~99년 회장 재임 시절 농협의 판매·유통 사업인 경제사업 부문 확대를 강력하게 밀어붙인 인물이다. 최양부 전 청와대 농림수산비서관과 의기투합해 대도시 유통망인 서울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을 탄생시켰다. 농협 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경제사업 활성화가 거론되고 있는 요즘,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거듭된 요청에도 공식 인터뷰를 사양하던 원 회장이 어렵사리 중앙SUNDAY 취재팀과 마주 앉았다.

-지난주 농협중앙회와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농협개혁위원회가 잇따라 개혁안을 내놓았다. 어떻게 평가하나.
“하드웨어만 바꿀 문제는 아니다. 농협 내부의 소프트웨어가 바뀌어야 한다. 지배구조는 어찌 보면 사소한 문제다. 미안한 얘기지만 농협 임직원은 이기심을 자제해야 한다. 농민을 위한 농협을 만들려면 농업은행 때부터 뿌리 깊게 이어져 온 금융기관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임직원이 신부(神父)는 아니다. 그들도 사람이기에 봉사만 강요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은행원이 아니라 협동조합 직원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교육하는 의식화 작업을 해야 한다. 회장 시절에 신용사업 하는 직원은 취사병이고, 일선에서 전쟁하는 군인은 경제사업 하는 사람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신용사업을 농협의 주류처럼 생각하는 마인드를 바꾸는 데 5년이 걸렸다. 이런 마인드가 정착하기 전에는 아무리 고쳐도 농민이 원하는 농협이 될 수 없다.”

-중앙SUNDAY는 지난해 12월 중순 농협 개혁 기사 이후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성진근 전 농협개혁위원장, 최양부 전 청와대 농림수산비서관을 연속으로 인터뷰했다.
“기사는 잘 봤다. 모두 훌륭하신 분이고, 그분들의 발언에 이의가 없다. 다만 타의에 의해 하드웨어를 고쳤다고 해서 소프트웨어까지 저절로 바뀔 것으로 생각하진 말아야 한다.”

-개혁하지 말자는 얘기로 오해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이번 기회에 농협 전체가 경제사업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예전엔 농협 엘리트 중에서도 경제사업을 하겠다는 이가 많았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다 쫓겨났다. 당당하게 협동조합은 이렇게 가야 한다고 얘기할 사람이 지금 농협 내부에 얼마나 남아 있나. ‘예스맨’만 남고 바른말 하는 이들은 없어졌다. 그런 점에서 김용택 전 농협대학장 같은 이는 아까운 인물이다.”

-경제사업은 어떻게 키울 수 있나.
“농협중앙회에서 분리해야 한다. 최양부 전 청와대 농림수산비서관 생각과 똑같다. 관료화된 중앙회는 경제사업을 잘할 수 없다. 공무원이 장사를 제대로 못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읍·면 단위 일선조합은 너무 작아 경제사업을 하기 힘들다. 지금 시·군 연합사업단이 있지만 별다른 구속력이 없다. 이 사업단에 강력한 법인격을 주고 중앙회와 일선조합이 공동으로 출자해 경제사업을 펼치는 시스템을 고려할 만하다. 일선 조합이 시·군 단위로 통폐합하기 전까지 임시조치로 이런 방안도 괜찮을 것이
다.”

-걸림돌은 무엇인가.
“농협 직원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농협의 노조들이 개혁을 방해한다. 미곡종합처리장만 봐도 그렇다. 민간과 경쟁해야 하는데, 금융기관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인건비 저렴한 민간 미곡종합처리장과 경쟁할 수 있겠나. 적자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중앙회에 3개, 단위조합에 2개 등 농협에 모두 5개의 노조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노조의 상급단체가 대부분 민주노총이라는 사실이다. 농협 노조는 툭하면 농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단위조합 노조를 보호하다 보면 농민 권익은 멀어진다. 직원들이 요구하는 복지후생비를 충당하려면 조합장들이 경제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당장 돈 되는 신용사업이나 하려고 한다. 단위조합 노조가 회비를 내는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이다. 농민을 대변한다는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대표가 이런 역설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농협중앙회장 출신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농협이 지난 10년간 인심을 너무 잃었고 이미지도 나빠졌다. 경제사업을 홀대한 탓에 생긴 역풍이다. 그렇다고 농협에 농정 실패의 책임까지 덧씌우지는 말았으면 한다. 농협이 갖고 있는 농정 수단은 전체의 20~30%밖에 안 된다. 역대 정권이 수백조원을 쏟아 부었어도 해결하지 못한 농정 문제를 농협만 개혁하면 다 잘 풀릴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환상이다. 농협을 국영기업처럼 만드는 것도 잘못된 개혁이다.”

-전국 단위조합에서 올라오는 농협의 정보보고는 특히 선거 판세 읽기에 있어서 정확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던데.
“1997년 대선 때 나도 실감했다. 당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직후 충청권이 눈에 띄게 DJ 쪽으로 움직였다.”

-농협 개혁의 걸림돌로 정치 바람을 지적하는 이가 많다.
“다선(多選) 조합장은 일종의 ‘조합장 정치인’이다. 그들은 협동조합 운동가와는 다르다. 우리는 조합원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동시에 물건을 잘 팔아줘 소득을 높여 주는 협동조합 원칙을 중시했다. 반면 조합장 정치인들은 신용사업으로 돈을 벌어 농민에게 공짜로 나눠 주는 환원사업에만 신경 쓴다. 그래야 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도 직선제의 폐해다.”

-정치권이 전국조직과 돈줄을 쥔 농협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집권자와 국회의원이 보기에 농협은 충분히 활용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97년 대선이 끝나고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국회의사당으로 나를 불러서 가 보니 농협을 경제5단체와 같은 반열로 올려 경제 6단체를 만들겠다는 말을 했다. 농협이 생긴 이래 그런 대접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대선 때 그쪽을 도왔기 때문인가.
“난 중립을 지켰다. 아마 농협의 위상을 높이는 게 농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당선자 측에서 판단한 것 같다.”

-농정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밖에 안 되지만 농업과 관련된 유통·금융·건설·서비스 등까지 따지면 비중은 달라진다. 환경과 공동체를 위해 정부가 농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요즘 식(食)교육에 관심이 많다던데.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먹거리와 식생활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 일본은 2006년 ‘식육(食育)기본법’을 만들어 범국민운동을 하고 있다. 건전한 식생활로 잘못된 생활습관에서 오는 성인병을 막자는 취지다. 쌀밥·된장국·채소·생선 등 전통음식을 먹는 게 가장 건강한 식생활이다. 세계의 식량 사정도 달라졌다. 이제는 돈이 있다고 어디서든지 농산물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농업을 살린다는 차원을 넘어 국민 전체 생존의 문제로 식생활 개선을 다루고 빨리 입법화해야 한다. 여생을 식육기본법을 만들고 정착화하는 데 쓰겠다.”

원 회장은 98년 96%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재선에 성공했지만 1년 뒤 스스로 물러났다. 그 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이어졌고, 결국 그는 구속됐다. 민원을 들어 주지 않아 당시 정치권 실세의 미움을 샀다는 말이 나돌았다. 2003년 대법원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그는 2000년 거머쥔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원 회장은 그가 겪어야 했던 검찰 수사와 재판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를 재단했던 잣대의 공정성도 따졌다. 원 회장은 정치권과 농협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한국 정치권은 청렴한 농협 회장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원철희 전 회장은
서울대 법대 58학번으로 4·19세대다. 83년 부장으로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충남도지회장, 유통·기획담당 이사를 지냈으며 90년 청와대 농림수산담당 경제비서관으로도 일했다. 94년 2대 민선 농협중앙회장에 선출됐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자민련 정책위의장 등을 지냈다. 현재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이사장과 법무법인 화평 상임고문으로 일한다.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경영학적 입장에서 협동조합을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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