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복잡시스템과 대통령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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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79년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살해를 나는 현대의 시스템 이론 언어로 재구성해 상상(想像)하기를 좋아한다.닫힌 시스템은 카오스(엔트로피)가 많으면 죽고,열린 시스템은 질서과잉이면 죽는다.

장자(莊子)의 마지막에 나오는 글은 응제왕(應帝王)이라는 정치편인데 그 중에도 마지막이 혼돈우화(渾沌寓話)다.혼돈은 중앙을 다스리는 제왕의 이름이었다.혼돈(무한)에게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진 눈.귀.입.코의 일곱개 구멍이 없었다.친구로서 함께 잘 어울려 놀던 이웃나라 제왕 둘이서 그에게 이 일곱개 구멍을 뚫어주자 혼돈은 그만 죽고 만다.이들 두 제왕은 유한(有限)한 질서였다.장자의 저자는 현대 생물 시스템 이론을 꿰뚫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박정희씨가 살해된 것은 한국 역사의 일대 드라마였다.그를 죽인 것은 혼돈우화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카오스(혼돈)였다.'분단독재정치''저개발 고성장경제'라는 닫힌 기계적 질서 시스템인 그를 열린 시스템인 민주주의와 개방경쟁경제가 자객을 보내 살해했던 것이다.이런 어법(語法)은 적이 역술가(易術家)냄새를 풍길 것이다.하긴 역경(易經)은 일반적(형식적)시스템의 가장 오래된 전형이다.

박정희정권의 기능은 기업에 진입권(進入券)과 은행융자 접근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재계는 정치권과 관료에게 정치자금등을 헌납했다.그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를 정경유착이란 부정적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그러나 당시에는 이런 구조는 다만 무방했다는 정도를 지나 최적이었을 수도 있다.

소련체제가 서방의 그것보다 우수한 점을 많이 드러내고 있던 때였다.북한은 그 점을 배경으로 업고 무력도발 위협을 계속했다.당시 남한에서 전횡한 독재정치의 기업에 대한 죽이고 살리기 간섭 아래서 거액의 부패성 뇌물을 헌납하고도 경제가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정부가 이런 북한 위협에 대한 안보와 안정을 제공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낮은 1인당 국민소득에 비해 엄청 높은데 있던 생산잠재역량의 위치에너지 덕분이었다.박정희정권의 말기에는 독재와 부패의 이런 긍정적 조건이 모두 사라졌다.

그때 79년에도 지금처럼 가장 먼저 비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경제였다.YH사건.부마(釜馬)사태등은 불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아야 한다.박정희씨는 살해됐다기보다 변화된 환경과는 생물적 투입(섭취).산출(배설)기능을 계속할 수 없어 질식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그를 쏜 사람이 자신의 가장 긴밀한 내부조직이었다는 사실이 이것을 잘 설명한다.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정권은 박정희 시대의 해가 진 다음 그림자 또는 메아리 효과로서 존재했다.이들은 나라의 정치 시스템이 이미 바뀐지도 모르고 독재와 부패로 아직도 나라를 이끌었다.그들은 박정희씨가 살해된 시스템 이론적 원인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복잡 시스템(complex system)에 관한 과학은 역경의 곤(坤)괘 문언전(文言傳)과 동일한 발견에 도달했다.불선(不善)의 원인은 오래 쌓여 그 앙화는 하루 아침에 나타난다는 것이 그것이다.全.盧 양씨는 그래서 감옥에 갔다.

21세기를 향한 한국이라는 열린 복잡 시스템은 한보사건을 통해 이번엔 아무래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을 희생의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생물 시스템인 국가는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려고 때로는 무자비한 방식으로 체내조절을 행한다.경제에는 1년간 국내총생산의 1%쯤에 해당하는 약 3조원을 지워 없앴다.정치로부터는 아직도 남아 있는 독재.무능.부패를 색출하고 있다.그래서 한보사건이 현철씨.92년 대선자금,이렇게 비선형(非線型) 경로로 오직 金대통령을 향해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즉시 김영삼대통령이 국정 전반을 일단 국무총리에게 위임하고 청와대에서 한국이라는 시스템이 행하는 동화(同化)및 이화(異化)작용의 하회를 기다리고 있으라고 권하고 싶다.경제와 북한이라는 이 두 진짜 위기를 준비된 태세로 처리하려면 92년 대선자금 의혹에 온몸이 묶여가고 있지 않은 지도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 강위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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