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사라진 시민 양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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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0일 오후 2시쯤 대전시 서구 둔산동에 있는 지하철 대전시청역. 시민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타고 가는 동안 읽을 수 있도록 상·하행선 개찰구 안쪽에는 각각 한 곳씩 시민문고 책장이 있다. 하지만 책장은 듬성듬성 비워져 있고 먼지만 수북했다.

대전시 서구 둔산동 지하철 대전시청역에 설치된 시민문고에서 대전도시철도공사 직원이 도서 목록을 보며 분실된 책을 점검하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2007년 4월 시민문고를 설치할 당시 대전도시철도공사는 책장 한 곳마다 400여 권씩 모두 800권을 비치했다. 그러나 1년8개월이 지난 지금 책장에는 30여 권만 남아 있다. 시민들이 책을 가져간 뒤 반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 때 대전시청역을 이용하는 이기영(51)씨는 “처음에는 책장에 책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줄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양심 불량 현상’은 대전시내 지하철역 22곳에 설치한 시민문고 44곳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

◆비치된 책 중 94%는 ‘실종’=11일 대전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2007년 4월 1호선 2단계 개통 이후 22개 모든 역사 승강장에 시민들의 기증 등을 통해 모은 도서 3만여 권을 비치했다. 책이 없어질 때마다 수시로 보충하며 지금까지 9만6000여 권을 공급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책은 6000여 권에 불과하다. 무려 9만 권이 사라진 셈이다. 폐지 등 고물 값이 오르던 지난해 7월에는 하루에 2000여 권의 책이 없어지기도 했다. 대전도시철도공사 김용덕 홍보팀장은 “일부 승객이 폐지로 사용하려고 책을 무더기로 가방에 넣어 가려다 적발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타기 운동의 하나로 각 역 입구에 설치한 ‘양심 자전거’도 회수에 애를 먹고 있다. 대전도시철도공사는 지난해 4월 시청역 등 지하철역 10곳에 한 역당 30∼40대씩 등 420대의 공용 자전거를 비치하고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다. 시민들이 지하철역에서 내려 인근 시장이나 관공서 등을 갈 때 이용하도록 배려한 조치였다.

그러나 최근까지 24대가 돌아오지 않아 직원들이 나서 대여자 신원 파악을 통해 18대를 회수하거나 변상을 받았다. 하지만 시가 50만원이 넘는 자전거 6대는 대여자가 연락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거나 주소지 불명 등으로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해졌다.

◆분실 방지책 마련했어야=시민문고 설치와 무료 자전거 대여는 뾰족한 분실 방지 대책도 없이 진행된 행정 편의주의적 시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주부 김현주(49)씨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목적지에서 내릴 때 반납하려면 일부러 책장까지 가야 되는 불편이 있다”며 “지하철 안에 반납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전거 반납 장소도 부족하다. 현재는 자전거를 빌린 곳에서 반납해야 하는데 일부 시민은 빌린 장소까지 가기가 귀찮아 집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용덕 홍보팀장은 “도난 및 분실 방지를 위해 프랑스 파리의 ‘벨리브’ 같은 무인 자전거 대여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서형식 기자 ,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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