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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비경>페루 잉카유적 (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그것은'신의 지문(Finger print)'이었다.

황토색 속살을 잔뜩 내비친채 황량하던 안데스산맥의 푸른 기운이 점점 기세를 더하며 아마존의 울창한 정글로 내닫기 시작했다.물밑바닥의 갈색 모래를 잔뜩 움켜삼킨채 회색 물보라를 날리며 안데스산맥의 협곡사이를 질주하던 리우(강) 우루밤바의 굉음이 폭발하자 저멀리 마추픽추(케추아어로'늙은 산')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안데스산맥의 지운이 한데 모여 용솟음치는 해발 2천4백지점. 그러나 그것은 붉은 태양을 향한 잉카인의 제사단 와이나픽추(젊은 산)였다.마추픽추는 담갈색 성곽 한켠을 살짝 보여준채 와이나픽추에 가려져 있었다.

14세기 페루는 물론 볼리비아.아르헨티나지역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아울렀던 찬란한'잉카'의 옛 도읍지 쿠스코(해발 3천4백)에서 3시간30분여의 외줄타기 곡예를 해야했던 관광객들.1남짓의 협궤에 심하게 좌우 용틀임을 거듭하는 관광열차는 차라리 롤러코스터였다.

마추픽추역에 내린 관광광객들은 다시 한번 곡예를 해야했다.이른바'하이렘 빙험도로'.1911년 마추픽추를 처음으로 발견한 미국의 고고학자 이름을 딴 14굽이길이다.낡을대로 낡은 버스가 10여분간의 폭주를 끝낼즈음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여유를 찾을 무렵 셰르파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눈에 잡혔다.

잉카의'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숲을 헤치고 벼랑의 한끝에 걸쳐있는'태양의 문'에 들어서자 2백여채의 석조가옥과 제단,성곽으로 넓게 펼쳐진 마추픽추가 하얀 구름옷을 신비스럽게 걸친채 한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왜 잉카인들은 아무도 찾을 일 없는 이 수풀림 속에 공중도시를 건설한 것일까. 피리 레이스의 지도에 의심을 품은채 잃어버린 문명탐사에 나선'신의 지문'의 저자 그레이엄 헨콕(영국)이 첫발을 내디딘 곳도 이곳 페루였다.현대과학으로도 좀처럼 풀기 어려운 수학.건축학적 지식을 신비스럽게 간직한채 마추픽추는 악어형상으로 누워 있었다.

정상에는 잉카인들이 숭상하는 숫자'3'(과거.현재.미래)계단을 허리에 지른채 라마가 올려지던 제사단이 놓여있다. 제사단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면도날처럼 잘려져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있는 바위들이 출현했다.높이가 6가 넘는 2백이상의 거석들이 손을 대면 베일것 같은 날카로운 모서리를 한채 5각.7각.32각등의 다양한 각도로 아귀가 물려있었다.쿠스코에서 볼 수 있었던 탄탄한 석조건축이 산 정상에 재현돼 있는 것.수차례의 지진으로 덧입은 스페인 건축물이 허물어져 내린 뒤에도 미동도 하지않은 바로 잉카의 비밀이다.

도시 중심의'3창문의 신전'을 지나 해시계를 거치면 귀족들이 기거하던 석조가옥들과 광장을 경계로 하층민들의 가옥이 줄지어 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잉카의 수학.건축기술의 신비를 간직한채 페루관광의 젖줄 마추픽추는 그렇게 남아있었다.

화살표를 따라 바위사이를 어지러이 헤매다'잉카의 길'에 나서면 어느새 지름길로 앞선 가이드가 살짝 미소를 지어보인다.마추픽추는 여전히 미로였다.서양인들이 밝혀낸 마추픽추의 전설은 진실의 미세한 부분일 것이다.마추픽추는 잉카 후예들의 짙은 눈동자 속에 갖힌 슬픈 눈망울이 빛을 발하게 될때 그 신비의 깊은 의미를 밝혀줄 미로로 남아있다. 마추픽추=신성은 기자

<사진설명>

현대과학으로 풀리지 않는 문명사의 수수께끼 잉카의'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전경.태양을 향해 우뚝 솟은 와이나픽추 아래로 마추픽추가 악어형상으로 누워 있다. 마추픽추=신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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