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M&A서배운다>2. 질레트 高성장의 비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1903년 안전면도기로 시작한 질레트는 흔히 면도기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볼펜.만년필등 문구류,칫솔,건전지등 소비용품을 골고루 생산하는 기업이다.지난해엔 97억달러(8조6천억원)어치를 팔아 9억5천만달러의 이익을 남겼다.질레트의 성장비결은'안으로는 쉬지 않는 기술혁신,밖으로는 유망기업 인수'로 요약할 수 있다.익히 알려진 페이퍼메이트.브라운.오랄B.워터맨.파커,그리고 듀라셀은 모두 질레트의 기업 인수.합병(M&A)사냥감이었다.

이런 질레트도 한때 외부로부터의 M&A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성장가도를 질주하던 질레트의 엔진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80년대초.순이익이 81년 1억2천만달러에서 85년 1억6천만달러로 정체를 보였고 급기야 86년에는 겨우 수지를 맞출 정도로 급감했다.때를 놓칠세라 사나운 매들이 공격을 개시했다.맨처음 덤빈 것은 화장품으로 이름난 레블론이었다.당황한 질레트는 86년 11월 향후 10년간 적대적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레블론에 5억6천만달러를 지불하고 무마했다.소위 그린메일을 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레블론측 투자은행이었던 드렉셀(지금은 망하고 없다)에도 향후 3년간 어떤 형태로든 질레트에 대한 M&A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백75만달러를 지불했다.드렉셀이 혹 다른 기업에 접근,질레트를 공격하라고 부추길까 지레 겁먹었던 것이다.내친 김에 질레트는 콜게이트등 5개의 경쟁사및 살로먼등 5개의 투자은행과 비밀리에 우호협정을 맺었다.우호협정은 글자 그대로 일정기간 공격 또는 지분을 늘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계약이다.그러나 질레트의 시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88년초 질레트 주식의 5.9%를 사 모은 뉴욕소재 M&A투자조합인 코니스턴이“자산가치를 사장(死藏)시킨채 잠자고 있는 무능한 경영진은 바꿔야 한다”면서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양측은 한바탕 치열한 의결권 대결을 벌였는데 질레트는 미리 협정을 맺어두었던 우군의 도움으로 52%대 48%로 간신히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질레트가 우호협정을 맺은 사실이 드러났고 이에 코니스턴은 경영진이 주주의 재산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을 숨긴 사실을 꼬투리로 법정소송을 제기했다.재판이 진행되면서 불리함을 깨달은 질레트는 그해 8월 코니스턴의 지분을 주당 45달러(평균 매입단가 32달러,당시 주가는 37.50달러)에 사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질레트는 주식매수 대금을 조달하기 위해 7억달러 이상의 빚을 져야 했고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경영권 탈취위협이 질레트의 경영에 미친 긍정적 효과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월가(街)의 평가다.질레트는 최선의 방어는 대다수 주주의 경영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고 믿고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이다.86년에서 90년까지 실적이 부진한 사업들을 과감히 처분하고 총 2천4백명의 종업원을 내보냈다.한편으론 적과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론 실적향상에 총력을 다했던 것이다.

그 결과 매출은 86년 28억달러에서 91년 46억달러로,순이익은 1천6백만달러에서 4억2천만달러로 급성장했고 주가도 덩달아 12달러에서 56달러로 뛰었다. 권성철 전문위원

<사진설명>

앨프리드 자이엔 질레트 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