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역 가스대란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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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유럽 전체에 영하 10도 내외의 이상한파가 몰아친 7일(현지시간). 에펠탑에서 가까운 프랑스 파리 15구의 가전기기 매장 ‘다티’는 난방기구를 찾는 사람들로 붐볐다. 매장 직원은 “평소보다 10%쯤 난로가 더 팔린 것 같다”며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것도 있지만 가스대란 소식이 한몫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매장에 있던 30대 주부 아니카 풀레는 “가스로 난방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스가 끊어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들 걱정에 전기난로를 샀다”고 말했다.

유럽이 러시아 가스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가스 가격 분쟁을 이유로 이날부터 유럽행 가스 수출관을 완전히 틀어막으면서 유럽 각국에서 ‘가스대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가스를 이용하는 중앙난방이 끊기는가 하면 공장·학교·병원 등이 문을 닫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파리도 영향권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전날 가스회사인 GDF-수에즈가 “프랑스도 가스대란에서 예외일 수 없다. 공급량이 평소의 70% 정도로 줄었다”고 발표하면서 시민의 불안심리가 증폭됐다. 가스 공급이 계속 줄면 단기적으로 휘발유나 디젤 값이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미리 기름을 사두려는 사람들이 주유소로 몰리고 있다.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도 수백 명의 주민이 전열기구를 사기 위해 매장을 찾았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도심 매장에서 마지막 남은 난로를 산 주민 츠바트코 페예프는 “난로를 구해 다행이지만 전기료를 더 많이 내야 하는 것이 걱정”이라며 울상지었다. 보스니아에선 난방용 땔감을 장만하기 위해 사람들이 전기톱을 들고 숲으로 들어가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공장 가동도 차질을 빚고 있다. 헝가리에선 일본 스즈키자동차와 우리나라 한국타이어 현지 공장이 가스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 수도 부다페스트의 공항은 난방용 천연가스를 중유로 대체했다. 헝가리 정부는 공장에 대한 가스 배급제에 들어갔다. 크로아티아는 슬로바키아에 이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가스대란이 확산되자 피아 아흐렌킬데 한센 유럽연합(EU) 대변인은 “유럽의 에너지 안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가스협상의 볼모가 된 상황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러시아를 겨냥했다.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러시아가 계속 에너지로 이웃 국가들을 위협하면서 장난친다면 더 중요한 국제적 영향력에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EU 대표들은 8일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서울=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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