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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거리를 품은 사찰, 봉원사

중앙일보

입력

* 산책을 즐기되 조금 더 깊이 걷고 싶다면, 단연코 사찰을 권합니다. ‘깊은 산중에 숨어 있는 사찰’이라는 이미지는 사찰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중의 하나입니다. 마음 뉘일 곳이 필요한 사람이나 걷는 것으로 세상을 품고자 하는 은근한 포부를 가진 이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는 곳이 바로 사찰입니다. 고즈넉한 주말여행을 계획하는 워크홀릭을 위해 서울과 인근의 사찰들을 소개합니다. 함께 찾아가 보시겠습니까?

봉원사 염불당 처마에 걸린 풍경과 등이 겨울산사의 스산함을 보여준다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뒤 안산 자락에 위치한 봉원사는 안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나 안산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사찰이다. 7024번 버스 종점에 위치하고 있어 찾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버스를 타고 가 봉원사 앞에서 내리는 것도 좋지만 연세대학교 뒤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어 보는 것도 좋다. 연세대 동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키가 큰 플라타너스, 포플러 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어 풍광이 더없이 좋다. 가을을 붉게 물들였던 단풍은 온데간데 없고 앙상한 가지뿐이지만, 인적이 드물어 호젓하게 걸어볼 만하다. 대학가 주변이지만 떠들썩한 분위기 대신 고즈넉하고 소박한 풍경이다. 골목을 지나다 보면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고택을 볼 수도 있다.

봉원사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으로 신라 진성여왕 때 도선국사가 현 연세대 연희궁터에 처음 지었으며 고려 말 공민왕 때 보우스님이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절을 지인이 중창하고 조선 영조 24년 찬즙, 증암 두 대사가 지금 위치로 절을 옮겨 중건하면서 이름을 봉원사로 지었다고 한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개화파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이동인 스님이 주석했던 이 사찰은 갑신정변의 요람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유물과 가람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으며, 1966년 복원된 염불당은 마포에 있었던 대원군의 별장 아소정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삼천불전, 예불을 올리고 있는 불자의 모습이 간절하다


봉원사는 따로 일주문이 없다. 사찰 입구에 기괴한 모양으로 굽어진 3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입구 왼쪽에는 국내 최대의 목조건물인 삼천불전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고으며 오른쪽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의 탱화와 단청은 현재 경내에 머무르고 계시는 인간문화재 이만봉 스님의 작품이다. 대웅전 앞 넓은 마당에는 성도재일을 맞이하여 걸어놓은 색색의 등이 겨울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대웅전

성도재일을 맞아 걸려있는 등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입구에서 종각까지 가는 길에는 불자들이 기증한 16나한상이 독특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종각 뒤로는 대방이 있다. 동쪽으로는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혼백을 모셔놓은 영안각, 조실스님의 거처인 운수각, 한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봉원사에 기부한 부부의 제사를 지내는 전씨영각 등이 있다. 대웅전 뒤로는 명부전, 극락전, 미륵전, 칠성각이 자리잡고 있으며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만월전이 있다. 빛바랜 단청과 허름한 전각의 일부 모습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있다.

극락전의 화려한 단청, 전면 문살대에는 대나무, 국화, 연꽃 및 각종 화초를 덧붙여 장식했다


명부전 건물 전면에는 편액과 4개의 주련이 있는데 편액은 600년 전 유학자 정도전의 친필이고, 주련은 친일파로 지탄받는 이완용의 친필이다. 사찰에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건물인 미륵전에는 미륵부처의 입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만월전에는 약사유리광여레불이 봉안되어 있다. 만월전 뒤로는 안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나 있는데, 경내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 안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만월전 뒤로 이어지는 안산 등산로는 찾는 사람들이 많다


봉원사에서는 매년 단오절에 영산재(靈山齋)라는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영산재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법화경을 설법하실 때의 모습 그대로를 재연하는 것으로 불교의식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장엄한 의식이라고 한다. 본래 영산재는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이었지만, 지금은 전통문화의 하나로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 부처님의 참진리를 깨달아 번뇌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 대중이 참여하는 불교의식으로서 더 가치가 있다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이 되어 이곳 봉원사에서 해마다 정기적으로 시현하고 있다. 또 국내 또는 해외의 다양한 행사 및 공연에 초대되어 장엄한 불교전통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영산재


지난해 2008년을 되돌아보면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아왔지만 손에 잡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허무함에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무거운 1월, 세상사를 잠시 잊고 바람결에 스치는 풍경소리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가까운 겨울산사를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장정순 워크홀릭 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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