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짚기>6월 世代 십년의 긴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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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 의 요즘 노래방 애창곡은 강산에의'라구요'와 김현식의'추억만들기'다.너무 처진다고? 그럴 지도 모른다.박사과정 대학원생인 그보다 너댓살 어린 후배들만해도 나온지 몇달 안된 신곡을 댄스건 뽕짝이건 거침없이 불러대니까.그는“어차피 따라가지 못할 거,그냥 내 취향을 고집한다”. 직장인 친구들은 단란주점 갈 때마다 최신 댄스곡에 도전하는 모양인데,그네들 역시 자기 노래가 아니란 느낌은 마찬가지일 터.90년대 들어 현란하게 쏟아져 나오는 대중문화 상품의 흐름을 일일이 따라가기에 자신의 세대는 역부족이란 걸 그는 미리 인정한 셈이다.

대학신입생이었던 10년전 그의 애창곡은'광야에서'였다.물론 그게 다는 아니었다.이재성의'촛불잔치'나 윤수일의'아파트'도 애창곡이었고 혼자 있는 시간엔 안치환이나 김광석도 들었다.그러나 그런 사적(私的)인 감수성을 개발하기에는 광주에서 숨진 시민들의 처참한 사진이 주는 자극은 너무도 강렬했다.한국의 87년 6월항쟁 세대의 문화는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펼쳤던 미국의 60년대 히피세대들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민중적 에너지를 분출했던 80년대 문화를 두고 어떤 이는“전위적이고 실험적이기보다는 대중주의적이었다”고,또어떤 이는“정치적으로는 급진적이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었다”고 표현한다.

미 국 히피들의 저항문화가 마리화나 연기와 자연으로 돌아간 알몸 남녀들의 우드스탁 축제풍경으로 이어지는데 비해,한국의 80년대를 주도했던 세력들의 문화적 정체성은'도덕주의적 보수주의'에 가까웠다는 지적이다.이들은 90년대 국가적 표어가 된 국제화.세계화보다는 조선시대말 항일의병들의 민족주의에 친근했고,이들이 복원하려던 공동체문화 역시'모던'하기보단 전근대적 성격이 짙었다.

'본토발음'을 흉내내는 부끄러운 영어공부를 거부하고 한글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으며 대학축제는 쌍쌍파티에서 대동놀이로 옮아갔다.이런 문화는 실제 87년 6월세대가 수십만 군중 속에서 집단적이고 대규모적인 역사체험을 한 세대라는 사실과 닿아있기도 하다.그러나 그 역사체험의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80년대 문화의 폭발력은 90년대 문화를 주도하는 힘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만다.히피들의 저항문화가 꽤 오래 잔영을 남겼고,60년대 젊은이들이 이미 중산층이 돼버린 미국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 시작된다.

지금 한국의 30대들의 시련은 오히려 미국의 90년대 세대와 닮았다.최근 한 시민단체강연을 통해 30대 초반에서 중반의 87년 6월세대와 만난 인하대 국문과 최원식(48)교수는 그네들이 털어놓는 말에 놀랐다.이민가고 싶다,이민을 안가더라도 1억원만 있으면 직장 때려치우고 시골가서 살고 싶다고,자신들은 직장에서 승진도 어렵고,대학에서 자리얻기도 어려운 세대라고 하소연을 쏟아놓은 것이다.

절대적인 경제수준은 낮았지만 고속성장의 신화가 사회 전반을 고무하던 시절에 사회에 진출,그럭저럭 자리잡은 40~50대와 새로운 문법아래서 자란 20대 사이에 낀 30대.어느새 애늙은이가 돼 노스탤지어와 회고주의 상품을 내놓는가 하면,“문화적으로 아예 도태하는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겪기도 한다.그러나“기성의 문화에 저항하는”문화전통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학력파괴의 상징인'서태지'에 동조하는 세대에 연대감을 느끼고,80년대 대학생들이 간과했던 록음악의 저항성을 90년대에 조명해낸 것 역시 30대들이다.

올해초 제일기획이'트위너(tweener)'로 이름붙인 30대 낀세대 직장인 1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 건설회사 대리는 자기시대 정체성을

이렇게 요약했다.“우리는 공동체의식을 갖고 있으면서 신세대 사고도

이해할 줄 아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세대다.그래서 30대가 20대보다 오히려 더

진보적이라는 말이 나온다.”이 정체감이 문화생산을 주도할 전술로 얼마나

운용될 수 있을지.여기에'낀세대'아닌'허리세대'로서 87년 6월세대의 문화가

자리잡을 가능성이 달려있는 듯하다. 이후남 기자

<사진설명>

87년 6월 고 이한열군의 장례시위.위는 진혼무를 추는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이애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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