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권리를 중시하는 ‘노원 의료생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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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환자를 위해 문턱을 없앴다. 침대도 다리를 잘라 높이를 낮췄다. 이제 장애환자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침대에 오를 수 있다. 약재는 저공해와 고품질로 소문난 ‘옴니허브’를 쓴다. 하지만 진료비는 일반 한의원과 같다. 노원구 ‘함께걸음 의료생협’이 상계전철역 근처에서 운영 중인 한의원이 주민 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새로운 의료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노원 지역주민 467명이 공동출자해 만든‘함께걸음’한의원이 새로운 의료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어 화제다.

지역주민 467명이 만든 한방병원
“처음엔 긴가민가했어요. 주위의 권유로 찾았는데 가족적인 분위기에다 젊은 선생님이 어찌나 진맥도 잘하고 친절한지. 이 병원의 친절에 중독된 것 같아요.”한달에 7번이나 찾아왔을 정도로 ‘함께 걸음’ 한의원의 팬이 된 유난숙(51·상계동)씨. 그는 몇 년 전부터아프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다.여러 병원을 다녀도 차도가 없자 주위의 권유로 이곳을 찾은 것. 유씨는 “주민들이 직접 만든 한의원이라 그런지 증상에 대한 설명을 잘 해주고 약에만 의존하지 말고 생활방식을 바꾸라는 조언도 해준다”며“약도 좋은 걸 써서 그런지 잘 듣고, 특히 ‘뜸’ 효과가 아주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 한의원을 운영 중인 함께걸음 의료생활협동조합(이사장 이일영)의 강봉심(36)사무국장은 “서민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주치 병원을 만들자는 취지로 지난 2002년부터 준비해 드디어 작년 2월 조합원 467명이 총 8000여만 원을 출자해 한의원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이 병원의 가장 큰 특징은 환자 권리장전을 중시해서 의술을 펼친다는 점. 일반 소비자 권익이 보호되는 것처럼 병원을 찾는 환자도 똑같은 소비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환자 권리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의미다.
 
장애우를 진정으로 배려하는 병원
진료를 책임지고 있는 박수현(28) 원장은 “처음에는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말씀드려도 환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며 “지금은 환자가 먼저 마음을 열고 내 얘기를 듣고 여러가지를 물어보며 건강상담을 청해 오신다”고 전했다.
환자 권리장전의 핵심은 ‘알 권리’다. 병명, 병의 진전 예측, 진료계획, 치료와 수술내용, 약의 이름과 작용, 부작용, 필요한 비용 등에 대해 납득될 때까지 설명을 받을 권리를말한다. 박 원장은 “의사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사회이긴 하지만 환자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가면 충분히 그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며 “개인이 지키기 힘든 건강문제를 여럿이 힘을 합쳐 해결하다 보면 그 고통이 훨씬 줄어든다”고 말했다.

의료생협에서는 한의원을 중심으로 주민 대상 건강강좌나 장애인을 위해 찾아가는 의료서비스 등을 실시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이 활동들이 주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점차 조합 가입자와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작년 4월 조합원으로 가입한 후 건강 강좌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는 양혜련(40·상계동)씨. 그는 “장애우를 진정으로 배려하는 병원이 그리 많지 않다”며 “틀을 먼저 만들어 놓고 구성원들을 거기에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의 의견에 따라 의료활동이 이뤄지고, 나아가 조합의 모양도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고 뿌듯해 한다. 함께걸음 의료생협은 앞으로 한의원 뿐만아니라 재활의학과나 내과 등을 갖춘 양방병원도 개원할 예정이다.

문의= 02-937-5368

프리미엄 김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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