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정의 거꾸로 미술관] 엄숙주의는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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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무라 야스마사
[신(神)이랑 장난치기] 1991년

예수의 수난 이야기는 십수 세기 동안 매우 고정적으로 예술 작품에 소재를 제공해 왔습니다. 특히 십자가 처형은 그 특유의 스펙터클 때문에 수난의 하이라이트로 조명받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 제작된 바 있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극사실적 정밀묘사라는 초강수로 수난의 사실성을 증폭시켰다면, 이 작업은 십자가 처형이 내포하는 비장함과 무게감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경우이겠지요.

현대인에게 예수 십자가 처형 장면은 더 이상 엄숙한 종교적 의미에만 머물지 않지요. 정확히는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을 전지구적 '볼거리'로 끊임없이 각색하고 이벤트화하는 것이 작금 십자가 처형을 둘러싼 근황입니다.

이제 우리는 반바지 차림에 카메라를 목에 두르고, 신자가 아닌 관광객 신분으로 수난의 주변을 서성거려도 무방합니다. 상처 입은 성자 역시 소녀 취향의 바비 인형으로 대체돼도 큰 거부감이 일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목 하나는 제대로 지었다는 생각이네요. '신이랑 장난치기'라~. 그만큼 엄숙주의가 철저히 홀대받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자유주의가 부활한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번을 끝으로 '거꾸로 미술관' 연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1년이 지났더군요.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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