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퇴직금 중간정산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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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퇴직금을 중간에 타가는 증권사 직원들이 크게 늘고 있다.빚청산 때문일까. 국내 최대 증권사인 대우의 경우 지난달 30일까지 열흘간 퇴직금 중간정산 신청을 받은 결과 무려 1천3백여건이 접수됐다고 1일 밝혔다.촉탁직을 포함한 대우증권 직원 2천5백여명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다.회사측이 이들에게 일시지불해야할 퇴직금 규모만 해도 6백억원이 넘는다.

'퇴직금 중간정산제도'는 증권회사들이 법개정으로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제도인데 직원들이 너도나도 신청하는 바람에 회사측이 나서서 중간정산을 억제시켜야 할 판이다.

강창희 대우증권 상무는“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에 놀랐다”고 말했다.접수담당 직원은“마감이 가까워지면서 신청서가 몰렸고,해외나 지방근무자들의 팩스신청도 쇄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동원증권이 직원들로부터 일괄신청을 받아 3백57명에게 1백88억원을 미리 지급했으며 한일증권 역시 52명에게 27억원을 지급했다.

동원증권 구보회 인사팀장은“퇴직금 지급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증권사로부터 문의전화가 쇄도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확산되는 것은 주식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직원들이 자기돈이나 남의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다가 물려 빚더미에 올라앉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 증권가의 중론이다.워낙 빚청산이 다급해 퇴직금의 중간정산을 원하는 직원들이 증권회사마다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증권회사의 특성도 이같은 현상에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다른 직업에 비해 평생직장 의식이 약할뿐더러 보다 적극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동원증권 조현열 노조위원장은“나중에 퇴직금을 받는 것보다 미리 받아 굴리는게 더 이익이라는 생각이 조합원들 사이에 팽배하다”고 말했다.대우증권에선 입사 2~3년차 신출내기 사원들까지 얼마 안되는 퇴직금을 미리 받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신청서를 반려하느라 인사담당 간부들이 애를 먹기도 했다.

증권회사들이 퇴직금 중간정산제도를 적극 도입한 동기는 누진율이 적용되는 막대한 퇴직금 적립 부담을 덜고,조만간 성과급제.연봉제 도입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 종전의 퇴직금제도를 따를 경우 실적이 탁월한 일부 영업직원들의 엄청난 퇴직금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최근 퇴직금제도를 대체하는 획기적인 인센티브제도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동원증권 김정태 부사장은“이번 퇴직금 정산과 아울러 수탁수수료.채권매매수익과 같은 각종 영업수익의 30%를 영업직원들에게 분기별로 지급하는 획기적인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했으며 조만간 완전한 연봉제로 이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결국 퇴직금중간정산제도가 이처럼 증권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직원들의 빚청산 수요와 회사측의 인센티브제도 강화정책이 맞물리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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