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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1980~90년대 경제정책 브레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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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60년대 후반 서울대 상대. 미국의 저명 경제학자인 존 K 갤브레이스 하버드대 교수가 특강을 위해 강단에 섰다. 강의를 마친 갤브레이스는 질문을 받겠다고 했다. 모두 주저하고 있을 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곤 유창한 영어로 질문을 쏟아냈다. 5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구본영(62·사진)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었다. 상대 66학번 동기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고인을 “어려서부터 영어에 뛰어났던 국제 신사”로 기억하는 이유다.

47년생인 고인은 서울고·서울대를 나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했다. 39세이던 86년 김만제 당시 경제부총리가 경제기획원 국장급(제3협력관)으로 발탁해 대미 통상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정통 관료가 아닌 연구원 출신에게 요직 국장을 맡긴 파격 인사였다. 고인은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쌓은 외국인 인맥을 활용해 맡은 일을 척척 해냈다. 그 뒤 주미 대사관 경제공사, 교통부 차관, 청와대 경제수석, 과학기술처 장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초대 대사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고인의 한자 이름(具本英)은 세 글자 모두 좌우 대칭이다. 이름에 걸맞게 성품도 반듯하고 깔끔했다는 게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대학 은사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는 “명석하고 성실해 부총리 시절 정책 개발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공직을 마친 뒤 김&장 법률사무소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외국 고객에게 한국경제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등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족으론 부인 이길혜(화가)씨와 아들 영모씨, 딸 혜영씨가 있다. 사진작가 구본창씨와 구본철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 등 두 동생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7일 오전 8시. 02-2072-2091.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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