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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북한식량돕기 모금운동 왜 문제삼나 - 당국 규제 명분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4 지금 정부는 인도적 차원의 대북 민간지원운동이 갖는 민족사적 중요성을 과소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북한의 참혹한 식량사정이 알려지면서 우리사회 각계에 북한동포 돕기운동이 봇물터지듯 확산되고 있다.지난 3월말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70%가 북한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수백만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런 동포애의 발로이며,인간으로서 당연한 양심의 표출이다.

그런데 이런 북한동포돕기가 북한 정권의 비윤리성과 죄악성을 잘 모르거나 그것에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확산되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수많은 주민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돈을 김일성 부자 성역화에 쏟아붓고 전쟁준비에 열을 올리는 북한 당국에 대해 개탄하지 않는 우리 국민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북한동포돕기가 이렇게 봇물 터지듯 확산되는가.아무리 북한 정권이 밉다고 해서 그 밑에서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우리 동포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체제나 이념도,북한의 개혁.개방이나 통일도 북한 동포들이 살아있고 난 다음의 이야기다.북한 동포들이 굶어죽고 난 다음에 통일이 무슨 소용이며,개혁.개방이 무슨 소용인가. 머뭇거리다가 시기를 놓쳐 정말로 수백만명의 북한 동포들이 굶어죽는다면,통일후 그들이 우리가 그렇게 죽어갈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 원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지금 북한은 남한의 민간지원을 고마워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남한의 지원으로 북한 주민의 민심이 남한으로 쏠릴까봐 크게 염려하고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북간의 증오심을 녹이고 민족화해를 성취하기 위해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북한 동포를 돕기 위한 민간운동은 통일을 위해서도 너무나 중요하다.나눔운동은 바로 통일운동이다.우리 국민이 얼마나 우리 것을 북한 동포와 나눌 수 있는가가 바로 통일성취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일선 학교에 지침을 내려보내 나눔운동을 규제하려 하는 것은 너무도 큰 잘못이다.어린 학생들이 북한 어린이들의 소식을 듣고 호주머니를 털어 성금을 모으는 나눔운동을 정부가 막는다면 민족의 장래는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최근 민간의 대북지원운동에 대해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한 기부금품모금규제법은 인간의 선행을 규제하는 악법이다.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그들을 돕기 위해 사람들에게 도울 것을 호소하고 모금운동을 하는 선행을 법으로 막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정부가 민간의 대북지원활동에 대해 염려하는 이유는 4자회담에 자칫 장애가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일 것이다.우리도 4자회담의 성사를 원하고 있다.그러나 4자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당장 죽어가는 생명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지금 북한 동포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우리가 죽어갈 때 우리에게 식량을 보내주어 생명을 살려준 사람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식량지원을 무기로 강압적으로 북한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보다 그들의 진정한 마음을 사는 것이 훨씬 더 나라에 이익이 되지 않겠는가.

서경석〈민족돕기運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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