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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대상을 연기력으로 준다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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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2003년 연말, SBS-TV 연기대상의 최종 수상자로 ‘올인’의 이병헌이 호명됐다. 당시 김수현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정하지 않은 상은 받는 이에게도 모욕”이란 글을 올려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해 ‘완전한 사랑’에 나온 김희애가 대상을 받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었다.

매년 연말 마지막 주간이면 지상파 방송 3사가 잇따라 시상식을 편성한다. 그중 연기대상은 그 한 해 자사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이다. 지난해 12월 30일 방송된 MBC-TV 연기대상 2부 시청률이 28.6%를 기록하는 등 시청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하지만 김수현 작가의 경우에서 보듯 매년 연기대상 수상 결과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특히 30일 MBC 연기대상의 하이라이트인 대상을 ‘에덴의 동쪽’의 송승헌과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 공동 수상한 데 대한 논란은 아직도 뜨겁다. 누가 봐도 ‘김명민이 발군인데 왜 굳이 영광을 나눠야 하느냐’는 주장이 온라인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방송사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3대 지상파 방송사의 연기대상이라는 상은 이름과는 달리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연기력을 기준으로 시상된 적이 없다고 봐도 좋기 때문이다. 이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연기대상의 절대 기준은 바로 ‘방송사에 대한 기여도’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송승헌이 대상을 차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간신히 시청률 20%에 턱걸이한 드라마요, ‘에덴의 동쪽’은 30%대를 넘나드는 인기 드라마다. 게다가 ‘베토벤 바이러스’는 18부작이고 ‘에덴의 동쪽’은 50부작이다. 시청률 25%가 넘는 드라마는 광고 판매 수입을 130%까지 늘릴 수 있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방송사 입장에선 이런 효자가 없다.

오히려 김명민이 2007년 배용준과 대상을 경합하지 않았더라면 송승헌이 단독 수상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 MBC 연기대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는 ‘태왕사신기’의 배용준이었다. 그러나 배용준은 다리 부상을 이유로 시상식 참가에 미온적이었고, 상이 ‘하얀 거탑’의 김명민에게 거의 돌아갔을 때에야 ‘참석하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결국 대상은 목발을 짚은 배용준의 차지가 됐다.

이런 김명민을 2년 연속 그냥 돌려보내 그와 원수를 지는 것도 MBC로서는 현명한 생각이 아닐 터. 그 결과 MBC 사상 첫 대상 공동 수상이 이뤄진 것이다.이처럼 방송 3사 공히 연기대상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시청률이다. 여기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 때는 방송 기간이 긴 쪽이 유리하다. 그 다음엔 화제성이나 연기자 개인의 스타성, 각 방송사 특유의 취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MBC가 스타 연기자의 이름값에 좀 더 큰 비중을 두는 반면 KBS는 1980년대부터 주말 저녁 때 1TV에서 방송되어 온 대하사극의 주인공을 지극히 편애했다. 97년 유동근(용의 눈물), 99년 채시라(왕과 비), 2000년 김영철(태조 왕건), 2001년 최수종(태조 왕건), 2005년 김명민(불멸의 이순신), 2007년 최수종(대조영) 등이 대상을 수상했다. 다만 지난해는 김혜자의 ‘엄마가 뿔났다’가 워낙 강세여서 ‘대왕 세종’은 대상 수상자를 내놓지 못했다.

사실 대상 공동 시상의 원조는 SBS다. SBS는 2001년 전인화-강수연(여인천하), 2004년 김정은-박신양(파리의 연인)에 이어 2007년에는 ‘내 남자의 여자’의 김희애와 ‘쩐의 전쟁’의 박신양에게 대상을 갈라 줬다. 이런 SBS가 31일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에게 대상을 건넨 것은 이변 중의 이변으로 꼽힌다.

‘바람의 화원’은 영상미와 작품성, 그리고 문근영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시청률에선 단 한번도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조강지처 클럽’의 오현경, ‘일지매’의 이준기, ‘온에어’의 송윤아,김하늘 등 경쟁자들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수치다.

그럼 왜 문근영이었을까. 대개 각 방송사는 연말 시상식을 앞두고 약 두 달 전부터 시상식 진행 팀을 꾸린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평PD들의 의사 수렴. 시상식 3주 전이면 대개 후보가 확정되고, 국장과 CP선에서 수상자를 결정한 뒤 섭외가 진행된다.

그러나 문근영의 수상 결정은 시상식 당일, 드라마국을 넘어 SBS 경영진 선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기부 천사’로 잘 알려진 깨끗한 면모가 방송사의 전체적 이미지에 도움이 될 거란 정치적인 결단이 작용한 셈이다.

이렇듯 방송사 연기대상에서 주최 측의 시상 기준(실적)과 시청자의 기준(연기력)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은 항상 논란의 여지를 내포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연기대상’이란 이름으로 상을 주는 이상 연기력이 가장 중요한 지표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방송사라는 기업이 공헌도에 따라 연기자들에게 상을 주겠다는데 그걸 뭐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걸 마치 연기를 평가한 것인 듯 포장해 방송이란 공기(公器)를 이용해 생방송으로 내보냈다는 건 문제다. 이런 게 바로 방송의 사유화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방송의 수준을 보면 이런 사건은 앞으로도 매년 반복될 전망이다.

송원섭 JES 엔터테인먼트 팀장 f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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