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섭씨 국가정보기관 너무 흔들어 - 침통한 안기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운영차장의 청문회가 열린 23일 내곡동 안기부 청사 분위기는 참담했다.

“국가정보기관의 살림을 책임졌던 고위인사가 의혹사건과 연루돼 청문회에 섰다”는 당혹감 때문이었다.한때 한 식구였던 인사가 난타당하는 것도 언짢았고,다른 한편 오만하게 비치는 그의 모습이 안기부의 인상을 그르칠까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각기 다른 이유로 씁쓸해했다는 얘기다.

하루종일 일손을 놓고 청문회를 지켜본 국.실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金씨의 돈독한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모실장은 金씨가 이임사에서“내 의혹을 규명한다면 전재산 5억2천만원을 주겠다며 결백을 호소한 점을 믿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 간부는“金차장이 안기부를 너무 흔들었다”고 술회하며 청와대와 김현철(金賢哲)씨만을 의식해온 행태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꼬집었다.그는 金씨가 취임초 안기부 분위기를 바꾼다며 채용했던 엘리베이터걸이 일부 직원들과 스캔들을 일으켜 구설수에 올랐던 점을 상기시키며“음지에서 소문없이 일하는 안기부의 생리를 너무 몰랐던 사람”이라고 힐난했다.

“목표의식.자기도취가 지나쳐 일을 낼줄 알았다”는 말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안기부가 국회에 직원을 파견해 의정활동을 감시한다”든가“안기부 예산에 대통령 통치자금이 은닉됐다”는 주장,현직 안기부 간부이름이 거명될 때는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는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런 기류를 감지해서인지 권영해(權寧海)안기부장을 비롯한 고위간부들은 청문회를 TV로 지켜보면서 침묵했다는 것이다.

청문회를 지켜본'내곡동'의 대체적인 평은 金씨가 점수를 잃었다는 지적이다.무엇보다 의혹제기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인과 뻔한 얘기조차“정보기관 일을 어떻게 안다고 그러느냐”는 식의 답변이 국민감정을 거슬렸다는 것이다.표정이나 자세도'의연(依然)'하기보다 뻔뻔함으로 비치기 십상이었다고 아쉬워했다.

특히'아는 사람은 다 아는'탈선을 했던 金씨가“내가 결백한 것은 안기부 직원들이 다 알고 있다”며 반발한 대목에 대해서는 안쓰럽기까지 했다는 한 관계자의 푸념이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