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집 앨범 낸 이현우 "달콤한 감성으로 분위기 좀 살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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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우는 "맡은 배역에 충실하다 보니 좀 느끼해 보이는 것 뿐"이라면서도 10집을 낼 때 쯤이면 ‘좀 더 부드럽고 느끼한 음악’을 할지도 모르겠단다. [최승식 기자]

한 길만 고집해서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MP3시대가 열리면서 음반 판매량이 나날이 하향선을 그리고 있는 음악계에서는 더 그렇다. 서른 중반이 지난 나이에 갑자기 드라마.영화에서 종횡무진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 이현우(37). 그가 1년4개월 만에 아홉번째 앨범 'sinful seduction(위험한 유혹)'을 냈다. 이현우 특유의 편안함은 그대로지만 이전 앨범 보다 분위기가 더 밝아졌다. 혹시 달콤한 사랑에 빠진 건 아닐까. 그는 "생활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혼부부 모임에 가서 노래를 부를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노래는 모조리 이별 이야기더군요. '이건 아닌데…'란 생각이 들었죠. 그동안 너무 슬픈 노래만 부르면서 저를 그늘 속에 가둬둔 것 같아요."

이현우는 장마철 이불처럼 눅눅해진 감성을 햇볕에 널어 말렸다.

"원래 고집불통에 외골수였어요. 그런데 연기를 하다 보니 폭넓은 사람을 만나면서 이현우도 대중적인 인물이 돼 버렸어요. 많이 둥글둥글해졌죠."

8집에 이어 9집에서도 실험적인 전자음악을 추구하는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 아티스트 프랙탈(Fractal)과 함께 작업했다. 프랙탈은 최근 엄정화의 앨범에도 참여했다. 이현우 작곡.작사로 앨범을 거의 다 채웠던 8집과 달리 이제이.유해준.석훈 등 다양한 뮤지션의 이름이 보인다. 바쁜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제 스타일이 뒤처진 것 같았어요. 변화를 준다고 했는데도 녹음해 보면 그게 그거고…. 내 것만 고집할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죠."

타이틀 '멈추지 말아요'는 1980년대 록그룹 '무당'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무당의 공연을 봤어요. 어린 마음에 멋있어 보였죠."

미국에 살던 시절 아는 형에게서 건네받은 한국 가요 녹음 테이프 속에도 그 노래가 있었다. 이현우의 '멈추지 말아요'는 멜로디 흐름이나 리듬이 원곡에 충실하면서도 조바꿈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이현우 특유의 부드러움이 얹혀 있는 록이다.

"20년 전만 해도 우울한 시절이었어요. '멈추지 말아요'도 선동적이라고 찍혀서 가사를 바꿔야 했으니까요. 지금은 정치도 상생과 희망을 얘기하잖아요."

밝아진 2004년의 시대적 분위기 만큼 노래도 밝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9집 전체가 모조리 바뀐 건 아니다. 라틴계 댄스 음악에 록을 가미한 'My Diana', 속삭이듯 부르는 'When you touch me'는 듣는 순간 이현우의 노래라는 걸 알아차릴 만큼 그의 스타일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편안한 발라드 '욕심'이나 '비가와요'는 대중적으로 통할 노래다. 그러나 그는 이 곡들을 슬그머니 뒤로 밀쳐둔다.

"발라드 홍수 시대잖아요. 그 수많은 곡 중의 하나가 되고 싶진 않아요. 그런 노래 100곡도 넘게 만들었어요."

SBS 라디오 '뮤직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야 하는 그에게는 발라드가 더 지겹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의 삶이 바뀌면서 음악에도 변화가 생긴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TV가 아닌 무대에서 그를 만날 기회는 줄어들 것 같다. MBC 수목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 영화 'S다이어리' 촬영까지 겹쳐 앞으로 4개월간은 꼼짝 못한다. 크리스마스.연말 공연 계획만 잡혀 있다. 일러도 가을께야 이현우 콘서트를 볼 수 있다.

"요즘 공연을 안하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해요. 사실 공연할 때가 제일 즐거운데…." 아무리 '연기가 재미있다'고 자위해도 그는 어쩔 수 없는 가수니까.

이경희 기자<dungl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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