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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놀고 먹는 '아웃사이더' 개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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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빔툰의 작가 홍승우씨. 이번에는 엽기적이고 황당한 이야기 ‘개미광 시대’를 들고 나왔다. 윗 그림은 왼쪽부터 ‘개미동’ ‘개미남’ ‘개미짱’ 등 개미 3인방과 바퀴벌레 집단에서 따돌림당한 ‘바퀴각’이다.

'바른생활 사나이'인 줄로만 알았다. 일간지에 7년째 연재 중인 가족만화 '비빔툰'의 인상이 너무 강한 때문이다. 만화가 홍승우(36)는 이런 이미지 뒤집기의 쾌감을 확실히 아는 듯했다.

6년 전 잡지 연재작을 뒤늦게 책으로 묶어 최근 펴낸 '개미광 시대'(학산문화사.8500원)는 홍씨를 '비빔툰'의 소심하고도 선한 주인공과 동일시하려는 독자의 기대를 유쾌하게 배반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미 눈높이에서 그려낸 엽기.잔혹.명랑 만화다. 개미라고는 해도 주인공이 사지절단당하는 장면이 수시로 등장하고, 술꾼의 토사물도 먹음직스러운 빈대떡으로 묘사된다. 운전자가 내뱉은 가래침은 차도 횡단 경주를 벌이는 개미들에게 엄청난 장애물로 등장한다.

'개미광 시대'는 일관된 줄거리 없이 짧은 에피소드의 연속이다. 주인공을 굳이 꼽자면 황당한 발상을 천연덕스럽게 행동에 옮기는 '개미동' '개미남' '개미짱' 등 개미 3인방에다, 각진 얼굴 때문에 바퀴벌레 세계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바퀴각' 을 더한 4인조다. 이들의 종횡무진 활약 속에 개미들의 일상적 고충은 물론이고, 클린턴.르윈스키 스캔들에서 동화.영화.만화.CM송 등 온갖 대중문화의 소재가 정신없이 패러디로 등장한다. 작가는 SF.무협 등 다양한 장르의 틀까지 빌려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을 유감없이 풀어놓는다. 여성.어린이에 대한 배려 등 '비빔툰'에서 같은 자기검열의 흔적이 전혀 없다.

"가족만화를 오래 그리면서 저 자신도 좀 변하기는 했는데, 실은 이게 제 본 모습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정말 즐겁게 그렸어요. 어른들은 '이게 뭐하는 짓거리냐'하실지도 모르지만, 짓궂고, 허황되고, 괴팍스럽고, 까불고 싶고…그런 면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요. 이런 만화를 다시 그려볼 기회가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개미광 시대'는 1998년부터 1년반쯤 연재했지만 당시 단행본은 펴내지 못했다. 출판사가 인쇄비용이 많이 드는 컬러만화인 데다 단편물이어서 수지를 맞추기 힘들다고 본 것이다. 최근에는 컬러물이 흔해졌지만, 홍씨는 일찌감치 90년대 중반 데뷔 직후부터 컴퓨터로 채색을 입히는 작업을 고집해왔다. '개미광 시대'의 화려한 색감은 요즘 눈으로 봐도 빼어나다. 유머 감각 역시 연재종료 후 5년여의 시간차를 느끼기 힘들다.

홍씨는 일찍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한 것은 만화학과가 없던 시절의 대안이었다. 그는 훗날 만화가 이우일.CF감독 박명천 등을 배출한 학내 만화동아리'네모라미'의 창단멤버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윤승운.길창덕 등의 명랑만화 계보에 가까운 그의 작품은 갈수록 실험적인 만화가 주류가 된 동아리 내에서 '외로운 소수'였다고 한다.

그런 개인적 갈등에서 놓여나 마음껏 연재를 하던 시절의 작품이 '개미광 시대'다. 장편 극화만화와 달리 잡지 측의 잔소리도 거의 없었다. 개미가 주인공인 것을 포함, 작가가 좋아하는 요소를 한껏 집어넣은 작품이다.

"어렸을 때 집 마당에서 개미 구경하고, 파리.모기 잡아다 먹이고, 병에 담아 기르는 게 일이었어요. 개미랑 저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주변에서도 일벌레 같은 점이 개미 닮았다고 하죠. 일상의 작은 얘기, 어른이 돼서는 쳐다도 안 보려는 얘기를 하려는 점도 그렇고요. 그런 사소한 데서 재미를 발견하는 쾌감이 커요. "

홍씨는 어린이잡지에 곤충소재 SF물'파브르'도 연재 중이다. "아이들에게 뭘 보여줄까 고민하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걸 아이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글.사진=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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