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익기도 전에 절반 소비 - 本紙 단독입수 유엔 '대북지원활동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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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북한의 식량사정이 매우 위급해짐에 따라 국제사회는 대북(對北)식량지원을 서두르고 있다.일부에선 북한이 과도한 국방비와 체제유지비를 식량구입에 쓰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나 이미 북한주민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가고 있다.대북식량지원에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는 유엔의 북한 식량사정 보고와 최근 북한을 방문한 토니 홀(민주당)미하원의원의 인터뷰,지원식량의 배급과정 등을 정리했다. [편집자]

유엔 인도지원국(DHA)은 최근 북한 정부의 요청에 따라 '대북지원 활동

보고서'를 마련했다.인도지원국은 이 보고서에서

유엔아동기금(UNICEF).세계식량계획(WFP).유엔개발계획(UNDP).식량농업기

구(FAO).세계보건기구(WHO)의 북한 현지조사 내용을 정리하고 앞으로 1년간의 지원계획을 밝혔다.유엔이 지난 7일 발표한 1억2천6백만여달러 규모의 제2차 대북지원 호소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했다.본지가 단독 입수한 보고서를 요약했다.

◇식량사정 평가(WFP)=지난해보다 더욱 악화됐다.현재 2백36만이

부족하다.7월부터 9월 사이에 가장 극심해질 것이다.유엔이 당장 시급한

20만여을,북한 스스로도 구상무역 등으로 1백만을 마련키로 했지만 아직도

1백10만이 절대 부족하다.96년11월 조사단은 4백30만의 수확을 예상했으나 지난해 극심한 식량난으로 채 수확하기도 전에 옥수수 절반가량이 소비돼 실제 수확량은 3백만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다.그러나 식량수요 3백80만을 포함,필요 곡물량은 모두 5백40만이다.북한정부는 4~5월 비축 식량이 바닥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반 주민과 달리 농민들은 추수뒤에 직접 곡식을 나눠 받는다.예년에는

1인당 2백60㎏을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90~1백30㎏으로 줄었다고

한다.예외적으로 1인당 하루 3백g의 곡식을 받는 중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사람들에 대한 식량배급도 대폭 줄었다.따라서 주민들은 스스로 식량을 구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경제사정 악화 등으로 식량 찾기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영양실태와 질병가능성=홍수로 전국 2백개군 가운데 37개군의

공중보건위생소 2백98개가 전파되거나 부분적으로 파손됐다.이들 지역의

각종 의약품과 의료시설 부족현상은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현재

질병치료는 민간이나 전통요법에 의존하는 추세다.

WHO조사팀은 평북박천군의 한 병원에서 95년10월부터 97년3월 사이에

소아 영양실조가 거의 세배나 늘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없으면 식량부족으로 인한 면역체계 약화와 그에 따른

전염병 확산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이미 어린이들에게는 감염성

설사와 급성 호흡기 질환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2차 호소에서

마련되는 기금으로 홍역.

소아마비 예방주사를 오는 11월까지 북한 어린이 2백50만명에게 모두

접종하는등 보건위생분야에 대한 지원강화를 계획하고 있다.

◇농지실태=홍수로 유실된 수만㏊의 농지가 아직도 경작되지 못하고

있다.농부들은 구릉이나 가파른 언덕등에 새로 경작지를 개척하고 있으나

그로 인한 산악지 삼림의 황폐화와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앞으로 홍수가

나면 피해가 더 커질 것이다.

비료생산이 격감해 지력도 갈수록 떨어진다.옥수수를 보리.밀과 함께

지나치게 빽빽하게 심는 농작법도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인다.

[정리=이재학 워싱턴특파원]

<사진설명>

유엔과 세계 각국 민간기구들의 대북지원 식량 배급을 감독하는

세계식량계획 직원들이 북한 당국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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