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弔鐘 울린 3金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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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金정치에 조종(弔鐘)이 울리고 있다.한보리스트에 오른 30여명의 정치인이 검찰에서 조사받는 풍경은 정치부패의 현주소를 말해준다.YS(金泳三대통령)뿐만 아니라 DJ(金大中 국민회의총재)와 JP(金鍾泌 자민련총재)의 측근 실세와 대

선후보를 포함한 거물,중견의원들이 모두 한보의'검은 돈'을 받은'더러운 손'이라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한보게이트는 부패정치가 빚은 정경유착의 정점(頂點)이지만,한보 이후에도 정치권의 부패구조가 근절된다는 보장이 없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정경유착은 기업이 정치인과 관료에게 돈을 주고 금융특혜나 이권을 얻는 식의 한국형 부패의

전형이다.YS가“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고 장담했음에도 정경유착은 군정시대보다 더 심화-확대-고질화된 사실이 한보사건으로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문민정부의 정통성을 허물어서'부패공화국'으로 전락시킨 한보게이트는 YS정부가 시대정신과 조류,그리고 우리사회의 경제.사회.문화 발전에 맞추어 국가체제와 사고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났다.예컨대 대기업에 금융특혜를 거의

무제한 주었던 개발독재식 관치금융시스템을 선진국형으로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보게이트를 계기로 정치권의 썩은 치부가 백일하에 드러났다.고비용의 정치관행,정태수(鄭泰守)같은 비리기업인이 정치를 악용해 치부할 수 있는 제도의 허점,'안받았다'고 거짓말하는 비리정치인의 도덕성 마비등이 한국병의 실체다.3金은

속수무책이며 그들의 한계를 여기서 읽게 된다.3金정치의 기본성격은 지역주의와 사당(私黨)의 전근대성에 있다.3金정치는 이제 체제로 굳어져 가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이러한 정당구조는 집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적

투쟁을 악화시켰다.한 지역을 볼모로 잡는 선거는 정책과 관계없이 타지역을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여기서 정치가 사회의 갈등을 완화.조정해 국민을 통합시킨다는 근본기능이 상실되고 지역갈등만 증폭시키며,엄청난 돈이

들게 마련이다.

현재 한보게이트가 빚은 파국위기는 대선자금과 차남의 비리및 국정개입의혹의 진상이 안개속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더욱 악화되고 있다.정치권에 대한 수사로 정치대란이 일어나고 있으며,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사회가'아노미'현상을 표출하고 있

다.정치와 행정은 공백상태에 빠졌다.국가가 이 지경에 빠진 책임은 YS에게 있다.YS는 일부 학생.시민들이 조기퇴진을 주장하는 이유를 헤아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DJ와 JP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그들의 측근과 의원들도 한보뇌물을 먹은'더러운 손'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또한 YS정부의 부패와 현철의혹등을 감시.견제하는 야당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그들은 이제 YS와

한배를 탔다고 말해도 변명하기 어렵게 됐다.그럼에도 그들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한보문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오직'현철의혹을 밝히라'고 외칠 뿐이다.

야권의 집권전략은 DJ가 JP의 내각제를 수용하는 이른바 DJP연합이다.이것은 YS의 3당합당과 같은 야합이다.YS의 침몰이 3당합당에 원죄가 있다면,DJP전략은 YS의 대실패의 악순환을 의미한다.또한 현 위기의 뿌리는 87년 대

선때 양金의 분열에 있다.특히 DJ는 ▶노태우(盧泰愚)씨로부터 20억원을 받았고▶盧씨의 공약인 중간평가를 무산시키는데 협력했으며▶민주당의 12.12불기소반대투쟁에 소극적이었고▶주변에 5,6공세력을 포진시켜 개혁성이 퇴색했고▶색깔론시

비가 두려워 민주주의자의 정체성을 허물었다.DJ 자신이 과거의 족쇄를 채운 것이다.

한보게이트는 3金정치의 능력 밖에서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3金정치는 난국해결의 무능력을 고백할 뿐이다.이것은 설사 대선에서 DJP로 정권교체를 하더라도 부패와 혼란의 악순환을 예고해준다.3金정치로는 효율적 국정관리가 어렵다는 얘기

다.그래서 시민들은 3金정치에 조종을 치고 있는 것이다.정치권이 파국을 면하기 위해서는 사당을 해체해 정책정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더러운 정치인들'을 정치무대에서 퇴장시켜 새인물로 수혈하는데서 개혁은 시작돼야 한다.

선거공영제등 일대 정치개혁이 병행돼야 할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이를 위해서는'내고장 사람을 대통령으로'라는 백해무익한 이기주의적 사고의 틀에서 유권자들이 탈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주섭일 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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