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87. 남북 태권도 교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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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24일 워커힐 아스톤하우스에서 연 환송 만찬에서 북한 여자태권도 시범단원들이 춤과 노래로 화답하고 있다.

남북이 가까워지면서 태권도 교류도 활발해졌다. 알다시피 남북의 태권도는 상당히 다르다. 최홍희 총재가 만든 국제태권도연맹(ITF)은 1973년 창설된 세계태권도연맹(WTF)이 75년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에 가입할 때, 태권도가 IOC 승인종목이 될 때, 그리고 올림픽 정식종목이 될 때마다 방해공작을 했다. 하지만 온갖 방해를 뚫고 WTF가 국제공인기구가 되고,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이 되면서 ITF는 힘을 잃어갔다.

그러나 최홍희 총재가 사망하고, 북한 장웅 IOC 위원이 ITF의 새 총재가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개인적으로 친한 장 위원이 ITF 총재가 된 것은 태권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교류 이야기도 나오고, WTF와 ITF의 통합 움직임도 시작됐다.

2001년 6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에 기본적인 합의를 하는 등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때 양대 태권도연맹 통합,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에 북한 선수단 참가도 합의했다. 체육 교류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확답을 받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남북 태권도 시범단의 상호 방문이었다. 2002년 9월에 먼저 한국 태권도 시범단이 평양을 찾았다. 구천서 당시 대한태권도연맹 회장과 이승완 부회장이 인솔했다.

그리고 10월에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서울에 왔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황봉영 조선태권도위원장이 인솔자였다. 북한 태권도는 우리하고 스타일이 다른, 좀 더 무술적인 시범으로 관심을 끌었다.

나는 북한 시범단을 워커힐호텔로 초청해 만찬을 대접했다. 한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빌라였다. 그곳은 김정일 위원장이 답방을 하게 되면 숙소로 쓰려고 개조한 단독 빌라였다. 시범단에게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에 오게 되면 쓰려고 고쳐놓았는데 오지 않아 여러분이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범도 잘 끝낸데다 좋은 곳에서 만찬을 하게 되니 마음을 푹 놓은 것 같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더니 자연스럽게 여자 시범단원들이 노래와 춤으로 답례를 했다. 운동선수들이 즉석에서 준비한 것 치고는 상당한 수준이어서 놀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큰 관심사라 또 물어봤다. 여전히 “한 번 약속하면 꼭 지키는 분이니 꼭 오실 겁니다”고 했다. 황봉영 단장이 나에게 “평양에 언제 또 올 거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김 위원장과 ‘맞술’ 든 분이라 아무도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 한다. “누가 그걸 알겠느냐”하니 “TV와 신문에 다 보도됐기 때문에 모두 알고 있다”고 했다.

내가 WTF 총재를 그만둔 뒤 WTF에서 수 차례 방문과 시범단 파견을 요청했는데 북한이 계속 거절했다. WTF와 ITF의 통합 문제도 유야무야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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