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귀신 목격담 쏟아진다, 울릉도 토박이가 경고한 길 ②

  • 카드 발행 일시2024.06.25

울릉도를 일주도로(43㎞)가 아닌 트레일(Trail)을 따라 걸었다. 울릉도 개척 당시부터 산나물 캐러 가던 길, 미역 따러 바다로 나가던 길, 산나물·갯것을 이고 포구로 나가던 길이다. 호모 트레커스가 6월 10일부터 5일간 직접 걸어 확인하고, 끊어진 길은 이어 65㎞ 라운드 트레일을 완성했다. 최희찬(55) 울릉산악회장과 함께 했다.

글 싣는 순서

① 첫날, 도동~내수전 10㎞
② 둘째날, 내수전~추산 22㎞
③ 셋째날, 추산~남양항 23㎞
④ 넷째날, 남양항~도동 10㎞

섬 개척의 역사, 내수전~추산 22㎞

울릉도 나리분지 투막집에서 추산마을로 가는 트레일. 김영주 기자

울릉도 나리분지 투막집에서 추산마을로 가는 트레일. 김영주 기자

울릉도 군내버스는 군청이 있는 도동을 중심으로 일주도로를 따라 동·서 방향으로 각각 달린다. 섬 동쪽 도동에서 시계방향으로 도는 첫차는 오전 6시 10분에 출발해 남양(남쪽, 6시 30분)·태하(서쬭, 7시 5분)·천부(북쪽, 7시 15분)를 거쳐 도동(7시 50분)으로 되돌아온다. 한바퀴 도는 데 1시간 40분이다. 반대로 도는 버스는 도동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해 천부(7시 45분)·태하(8시 10분)·남양(8시 25분)을 거쳐 8시 50분에 다시 도동에 닿는다. 버스는 각각 약 1시간마다 있다. 그러니 섬 어디든 30분 정도 기다리면 버스를 탈 수 있다. 시간도 비교적 정확하다. 트레킹이 목적이라면 렌터카나 택시가 필요 없다. 특히 첫차를 타면 여름에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울릉도 라운드 트레일 이틀째 코스는 섬 동쪽 내수전에서 시작해 섬 북쪽 추산까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22㎞ 구간이다. 괭이갈매기가 새끼를 낳는 섬목 해안과 관음도를 지나 천부 마을, 그리고 나리분지와 알봉 아래 서늘한 트레일을 지나 다시 추산 해변으로 빠져나온다. 이 길엔 최근 예쁜 카페가 여러 곳 자리 잡았다. 쉬엄쉬엄 쉬면서 울릉 섬의 속살을 걷는 코스다.

울릉도 내수전에서 섬목으로 넘어가는 숲길. 김영주 기자

울릉도 내수전에서 섬목으로 넘어가는 숲길. 김영주 기자

6월 11일 오전 7시 도동에서 출발한 버스는 10분 만에 내수전 전망대 올라가는 초입, 일주도로에 당도했다. 타고 내리는 승객이 많지 않아서인지, 버스는 쏜살같이 달렸다. 차창 밖 해안 풍경을 감상하다 행선지를 지나칠 수도 있는데, 버스에 탈 때 미리 내릴 지점을 말해두는 게 좋다.

내수전(內水田)은 19세기 말 울릉도 개척 당시 김내수라는 사람이 화전을 일군 곳이라고 한다. 뭔가 근사한 서사가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게만 알려져 있다. 고종의 울릉도 개척령 이후 울릉도에 들어온 사람들은 강원도·경상도뿐 아니라 전라도·제주도 등 다양했다고 한다. 김내수는 제주 대정 출신이라고 전해진다.

일주도로에서 내수전 전망대까지는 약 4㎞. 두 시간여를 올라야 한다. 시멘트로 포장 길이라 발바닥은 불편하지만, 길옆으로 상록수림이 울창해 위안을 준다. 찻길이 막힌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일출 전망대, 곧장 가면 섬 북쪽 섬목항으로 가는 트레일에 진입한다. 울릉도 둘레길, 해담길 3코스의 시작이다. 이정표가 잘 돼 있어 길을 찾기 편하다.

울릉도 내수전에서 섬목으로 넘어가는 숲길. 김영주 기자

울릉도 내수전에서 섬목으로 넘어가는 숲길. 김영주 기자

오솔길에 들어서자 서늘한 숲 터널이 시작됐다. 한여름 걷기 길에서 그늘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숲은 고요했다. 기자와 최 회장 말고 이날 걷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새들의 노랫소리도 맑고 선명했다. 트레일 중간 안내판엔 “섬참새, 박새, 직박구리 등이 이 숲이 산다”고 적혀 있다. 새소리를 입력하면 새의 종류를 알려주는 버드넷(birdnet) 앱을 켜서 확인하니, 휘파람새와 팔색조의 노래였다. 팔색조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한 새. “휘익 휘익” 팔새조의 노랫소리가 바로 옆에 있는 듯 또렷하게 들렸다.

도동에서 내수전 너머 섬목 가는 길은 1882년 울릉도 개척 당시에도 있었다. 육지에서 배를 타고 온 이들은 한반도와 가까운 섬 서쪽 학포·태하 포구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래서 울릉 옛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내수전 길은 학포에서 시작해 섬 북쪽을 돌아 동쪽으로 가던 길이다. 때론 해안 절벽과 맞닿은 고샅길을 걷고, 때론 위험한 구간을 피해 숲 깊숙이 들어가기도 한다. 깊은 산골인 듯 한데, 어느 순간 동백나무 가지 사이로 푸른 바다가 희끗희끗 보이는 식이다.

울릉도 내수전에서 섬목으로 넘어가는 숲길. 길바닥에 고사리 등 양치식물이 가득하다. 김영주 기자

울릉도 내수전에서 섬목으로 넘어가는 숲길. 길바닥에 고사리 등 양치식물이 가득하다. 김영주 기자

토박이인 최 회장은 내수전 길이 지금은 걷기 좋은 길의 대명사가 됐지만, 예전엔 훨씬 험했다고 말했다.
“어릴 적엔 이 길을 ‘귀신길’이라고 불렀어요. 여기서 사망 사고가 잦다 보니까, 이 길에서 처녀 귀신, 총각 귀신 등 온갖 귀신을 봤다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지금도 이쪽은 습하고 음지가 많아서 한낮인데도 으슥하잖아요. 혼자 다니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섬 북쪽 주민들이 도동·저동 포구로 이동하는 방법은 산길과 뱃길이 있었는데, 파도가 센 날은 배가 다니지 않아 산길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험한 날, 험한 산길을 넘느라 실족사나 낙석·동사 등의 사고가 잦았다. 김내수라는 사람이 밭을 일굴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너른 안부에 터를 잡은 게 아니라, 아슬아슬한 비탈길에 불을 지르고 그곳에 옥수수를 심고 감자를 심어 연명했을 것이다.

김윤배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은 “울릉도 길의 유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고 했다.
“1882년 울릉도 개척 당시, 섬을 찾은 이규원 감찰사는 학포에서 출발해 나리분지 너머 저동·도동 방향으로 갔어요. 또 다른 길은 (학포에서) 해안선을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갔지요. 이게 울릉도 길의 토대입니다. 나중에 해안 일주도로도 이 길을 따라 난 것이죠. 1960~70년대엔 슈바이처의 제자였던 이일선 목사가 울릉도에 들어와 왕진하러 다니던 길이 있습니다. 해안에서 산골 마을로 가는 길이지요. 이일선 목사는 당시 나물을 캐며 살았던 주민들이 있는 곳으로 계곡과 산 능선으로 들어갔어요. ‘호박길’이라고도 했는데, 눈 위에 난 사람 발자국이 커다란 호박잎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