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솟아날 구멍을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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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으면 그것을 찾아다니고 그래도 없으면 만들어라도 내려고 노력해야 하리라.하늘이 무너졌을 때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울 것이다.

지난해의 우리나라 관광수지가 15억달러 적자였다는 사실이 얼마전 보도됐다.해외여행 자제를 강조하는 말들이 또 한번 질펀하게 등장했다.다음은 이즈음 대한항공 이태원(李泰元)수석부사장으로부터 들은 아이디어다.

중국 국민으로서 지난해에 해외관광을 나간 수는 무려 5백만명에 이르렀다.그런데 한국을 찾은 사람 숫자는 10만명에 지나지 않았다.중국 사람들도 선진국 여행자처럼 한국에는 먹을 것,살 것,즐길 것이 없다고 안 온 것은 아니다.실은 중국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외국은 한국이다.

가까워서 항공요금이 가장 싸다.한국제 물건은 평균적 중국인 관광객 소득수준에 값과 품질이 가장 알맞다.특히 한국제 옷과 플라스틱 가정용품을 중국인 관광객들은 다량으로 사간다.중국산보다 디자인이 새롭고 만듦새도 깨끗하게 빠지기 때문이다.주로 서울 남대문시장을 그들은 좋아한다.친척과 이웃에 선물하는 풍습은 한국 사람보다 중국 사람이 더 두텁다.

이 5백만 중국인 해외관광객들이 지난해에 주로 나갔던 곳은 동남아였다.한국으로 왔더라면 그들이 잘 사가는 경공업 품목을 만드는 우리 중소기업들은 쏠쏠한 재미를 보았을 것이다.그들은 1류호텔에 들지 않고 여관이나 여인숙에 든다.여관 주인들도 수입이 괜찮았을 것이다.그들이 한국에서 좋아하는 음식은 삼계탕이다.양계장 주인과 삼밭 농민들이 호경기를 탔을 것이다.

중국관광객 3백만명이 한국에 와서 한 사람이 5백달러를 쓰고 가면 그 액수는 15억달러다.용하게도 우리나라 지난해 관광적자와 딱 맞아떨어진다.인구 13억의 나라 중국,남한 인구의 30배에 가깝다.여태까지는 여권 얻기가 어렵고 해외여행 나갈 돈이 없었다.지금부터 중국인들 사이에도 해외관광 봇물이 서서히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지난해 5백만 중국인 해외여행자 가운데 3백만명이 한국에 들렀을 수 있었다고 본 것은 적게 잡은 숫자다.

이런 중국인 관광객을 우리나라에 오지 못하게 막는 장애(障碍)는 오직 한가지밖에 없다.우리나라 정부가 그들에게 입국비자를 잘 내주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한국 정부의 이런 조심성 속에는 조선족 중국인들의 불법 장기체류 문제도 있을 것이다.그런데 중국의 여권신청 서류에는'출신민족'을 기재하도록 돼 있다.중국국적자에 한해서는 한국 입국사증 발급신청서에도 민족란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같은 동포인 조선족의 입국사증 발급 심사를 도리어 더 까다롭게 차별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다만 불법 장기체류는 안된다고 특별히 친절하게 경고하는 기회로 삼음은 당연하다.

여기까지가 이태원 부사장의 말이다.나는 업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李부사장처럼 우리 경제의 솟아 날 구멍을 찾고 있거나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그들이 찾아낸 솟아 날 구멍이 중국인 입국사증 발급 간편화 경우처럼 정부의 연구와 결단을 요구하는 때도 있다.

일본의 관광수지가 3백억달러 적자라는 것은 참고할 만하다.일본의 국내총생산은 우리나라의 15배 약(弱)인데 비해 관광수지적자는 20배나 된다.관광수지를 두고 말하면 우리나라도 적자를 질 수밖에 없다.외국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내국인을 위해서도 국내에는 관광자원이 턱없이 적다.반면에 소득이 증가되면서 외국 구경을 하고 싶어 하는 수요는 불어날 수밖에 없다.외국인이 국내에 와서 사갈만한 물건은 값과 품질에서 별로 없다.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이 해외에 가면 살만한 물건이 많다.

해외 나가고,거기서 물건 사오는 우리나라 관광객을 나무라는 따위의 쪼그라드는 푸념만 할 것이 아니라 외국관광객이 많이 와서 우리나라 물건을 많이 사가게 하는 늘푼수 있는 구멍을 찾아야 한다.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우리나라 관광수지를 일거에 흑자로 돌아서게 해낸다면 이것은 늘푼수 있는 구멍 가운데서도 가장 작은 구멍은 아닐 것이다. 강위석 (논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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