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부투 독재정권 32년 붕괴 초읽기 - 미국도 자이르 독재정권 퇴진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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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앙아프리카의 대국 자이르를 32년간 통치해온 세세 세코 모부투 독재정권이 붕괴 초읽기에 들어갔다.

모부투대통령에게는 지난 9일 세개의 비보(悲報)가 동시에 날아들었다.자이르 제2도시인 루붐바시가 마침내 반군의 손에 떨어지고,오랜 우방이었던 미국이 그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으며,반군과의 휴전협상이 별 성과없이 연기됐다는 것등이다.

모부투로선 풍전등화(風前燈火)에 처한 형국이다.

로랑 카빌라가 이끄는 반군은 이날 루붐바시를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속에 접수했다.

정부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주하면서 오히려 시민들에게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다.이로써 반군은 자이르 전국토의 약 절반과 수도 킨샤사를 제외한 주요도시 모두를 수중에 넣었다.

루붐바시의 함락은 모부투정권의 물적 기반이 사실상 와해됐음을 의미한다.루붐바시는 남부 샤바주의 주도(州都)로 다이아몬드와 동.코발트등 광물의 최대 생산지다.모부투정권은 이곳에서 세금의 70%를 거둬들여왔다.

주목할 점은 자이르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이곳 광산 소유자들이 카빌라의 반군 진입을 학수고대했다는 사실이다.

부패한 모부투정권이 세금 챙기기에만 급급했지 사회간접자본과 교육.의료시설등에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를 간파한 반군측은 광산 소유자들에게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지역개발을 약속해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루붐바시가 함락된 이날 미국은 모부투에 대한 지지를 공식 철회하고 그의 사임을 촉구했다.마이크 매커리 백악관대변인은“모부투는 더 이상 자이르를 이끌 능력이 없으며 우리는 질서있는 권력의 이양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미 국무부는

현재 반군 지도자 카빌라와 전화통화를 하며 정권접수 방안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미국의 태도는 이미 민심이 반군쪽으로 확실히 돌아섰다는 정세판단에 따른 것이다.기세를 올리고 있는 반군은 모부투정권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갖던 휴전협상도 무기한 연기시켜 버렸다.

위기에 몰린 모부투는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라쿨랴 볼롱고 육군참모총장을 새 총리로 지명하는등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그러나 군부마저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그의 몰락을 막을 방안은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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