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솔직히 무섭단 생각도 … 당론이 이렇게 셀 줄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8대 국회엔 크리스마스도, 연말연시도 없다. '쟁점 법안'을 두고 여야가 격렬히 대치 중이다. 전쟁터로 변한 국회의 한복판을 직접 보고 겪은 젊은이들이 있다. 중앙SUNDAY가 국회 대학생 인턴들의 체험담을 들어봤다. 다음은 기사 전문.

국회는 지금 ‘법안 전쟁’ 중이다. 민주당은 27일 이틀째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외통위에선 유혈 사태가 벌어졌고 정무위 등 상임위 회의실은 야당 의원에게 점거됐다. 국회 한복판에서 이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본 젊은이들이 있다. 국회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대학생들이다. 지난 8월 한국여성유권자연맹 ‘국회 인턴 프로그램’에 선발된 40여 명의 대학생은 넉 달 동안 국회의 실제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 23일 수료식 뒤에도 10여 명은 방학 기간 좀 더 경험을 쌓겠다며 국회에 남았다. 이 가운데 네명의 생생한 국회 체험기를 들어봤다.

“망치에, 소화기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솔직히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천예지(21·여·연세대 정외과 2학년)씨는 18일 외통위 회의실 앞에서 여야가 격렬히 대치하던 현장에 있었다. 그는 “국회에서 싸움을 해선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기물까지 파손하는 건 문제 아니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동훈(22·동국대 법학과 3학년)씨는 “솔직히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국회 안에서 벌어진 싸움이 창피하다”고 했다. “민주당은 야당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방법은 수준 이하”라며 “한나라당도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만나서 대화로 풀어야 했다”고 일침을 놓았다. “저는 왜 보좌관들이 그런 몸싸움에 나서는지 진짜 궁금해요. 자발적인지, 무언의 압력 때문인지….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있는데 왜 보좌진끼리 부딪혀야 할까요.”

정재연(24·연세대 교육학과 3학년)씨는 26일 아침 국회 본청 2층 민주당 당 대표실에 다녀왔다.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서’다.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점거한 뒤 외부 출입구로 사용되는 곳이다. “민주당의 분위기는 상당히 고무된 것 같아요. 지지율도 최근 더 올랐고…. 거여 정국에서 야당의 생존 방식 아닐까요. 국민이 원하는 ‘선명 야당’에도 부합하는 것 같고요.” 하지만 외통위 유혈 사태에 대해선 생각이 좀 다르다. “과격했던 게 사실이죠. 저도 그날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거리시위나 다름없다, 부상자가 안 나오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김강희(21·여·상명대 경영학과 3학년)씨는 19일 정무위 회의실이 점거되는 현장에 있었다. 김씨는 김영선 정무위원장실 비서로 일하는데 점거 장소가 비서실 바로 옆이었다. “장롱과 소파로 막아 놓은 걸 보고 기가 막혔어요. 바로 전날 외통위에서 그 소동이 있었는데 바로 다음날 또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전쟁터가 따로 없었죠.” 김씨가 22일 열린 정무위 간사회의에 잠시 들어갔는데 민주당 신학용 의원이 빨간 조끼를 입고 있었단다. “노조가 파업할 때 입는 그런 조끼 아시죠? 깜짝 놀랐어요. 그 조끼 하나로 대화를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거잖아요. 회의장 점거하고, 잠긴 회의장 문을 쾅쾅 두드리고, 빨간 조끼 입고 오고…. 정치라는 게 퍼포먼스구나 싶더라고요.”

대학생 인턴들이 여당에 보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비판들이 쏟아졌다. “많이 실망했어요. 외통위에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한나라당 명패를 집어던지는 걸 뉴스에서 봤는데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야당과 대화하면 (FTA 법안을) 상정 못할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아예 대화 통로를 차단한 거잖아요. 그건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거죠.” “정치의 가장 기본은 대화잖아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죠.” “예산 통과도 어이가 없었어요. 합의 없이 통과하다니 그것도 나름 날치기가 아닌가요. 여야가 함께 있는 이유가 뭔가요.” “일방 상정이 제일 싫어요. 차라리 싸우는 게 나아요.”
 
국감 20일 ‘밤샘의 추억’
이들이 ‘국회 전쟁’ 못지않게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은 ‘국회는 노는 곳’이란 선입견을 날려 버린 국정감사였다. 김씨는 “아, 국감 20일 하려고 내가 휴학까지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영선 의원이 정무위원장이 되면서 일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단다. 회의를 이끌어야 하는 위원장은 국감에서 질의를 하지 않는다. “모든 걸 서면 질의로 하셨어요. 게다가 위원장 업무까지 있으니 일이 오히려 늘었죠.”

신씨는 국감 기간 오전 4시까지 일하고 사우나에 들렀다 오전 7시에 출근했다. 점심시간의 쪽잠으로 버텼다. 상임위당 의원 한 명꼴인 자유선진당 의원실에 있었기 때문에 업무가 더욱 많았다고 한다. “다른 당은 의원들끼리 분야를 나눠 준비할 수 있는데, 선진당은 혼자서 모든 분야를 다 해야 하니까 개원 전에도 주말 근무를 계속했어요.”

천씨는 “개인 생활은 전혀 할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솔직히 국회 생활에 대한 환상도 있었는데, 의원이 되려면 희생해야 할 게 참 많구나 생각했어요. 다른 의원이 같은 내용을 먼저 하는 바람에 아예 그 질의를 못하실 때도 많았죠. 보이지 않는 노력이 훨씬 큰 것 같아요.”

정씨는 국감 기간 안산에 있는 집으로 퇴근하느라 택시비로 3만~4만원씩 쓰기도 했단다. “계속 국회에서 밤샘하면 부모님이 걱정하시니까 며칠에 한 번씩 오전 3시에라도 들어갔어요. 친구들은 ‘야, 거기서 뭐하느냐?’고 말하곤 했죠. 국회는 만날 노는 곳인데 뭐 할 일이 있느냐는 뜻으로요. 생각만큼 만만한 데가 아니라고 그랬어요(웃음).”

정씨는 국감 기간이 너무 짧은 게 불만이다. “기껏해야 3주 정도 되는데 피감 기관이 수십 개거든요. 교과위 같은 경우 전국의 교육청에 국립대 병원, 과학단체들까지 있어요. 국감은 상시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씨는 국감 때만 굽실거리는 공무원들에게도 일침을 놓았다. “의원님은 안 만나 주시는데도 국책 은행 간부들이 계속 찾아오더라고요. 제가 피감 기관에 조사를 나갔는데 척 봐도 어린 학생인 저에게 아버지뻘 되는 분이 ‘잘 부탁드린다’고 하고요. 그런데 국감 끝나니까 발길이 딱 끊기더군요. 국감이 연례 행사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대학생 인턴들은 문제점만 지적할 뿐 해결책 제시는 이뤄지지 않는 게 국감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학교에선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시하는 주요 수단이 국정감사라고 배웠는데 피감 기관과 사전 접촉이 많아 놀랐다”며 이를 국감이 형식적으로 흐르는 요인으로 보기도 했다.
 
실제론 점잖은 의원들
“사실 국회의원은 일도 열심히 안 하고 싸움만 한다는 인상이 강하잖아요. 언론에도 그런 모습만 비치고요. 의원들이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는 모습과 학자풍의 점잖은 분위기가 굉장히 놀라웠어요.”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국회의 숨겨진 모습’을 묻자 네 명이 똑같은 답을 내놓았다. ‘부지런하고 점잖은 국회의원’. 정치에 대한 뿌리 깊은 선입견이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밖에선 잘 몰랐던 문제점도 많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당의 힘이 생각보다 세더라고요. 의원님이 추진하던 지역구 관련 법안도 당론하고 다르면 포기하던데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자 지역의 대표인데 지역에만 너무 신경 쓰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선거를 의식해서 그렇겠지만 실망스러웠어요.”

“보좌관을 유난히 자주 바꾸는 의원님도 계세요. 심지어 인턴도 한 달에 한 번씩 바꾸더라고요.”

“지연이나 학연이 다른 곳보다 훨씬 중시되더라고요. 그런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 국회에서 생활하려면 무척 힘들 거예요.”

교사가 꿈인 정씨는 국제중 논란, 근현대사 교과서 논쟁 등을 보며 “교육이 정치에 너무 휘둘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단다.

18대 국회의 연말 성적표가 궁금했다.

“100점 만점에 절반 이상은 절대 못 주죠. 한나라당은 서민 정책을 제대로 제시 못했고 민주당은 저지하겠다는 말만 하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못 내고요.”

“40점이오.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요. 국감도 형식적이고.”

“20점? 원 구성부터 예산 통과까지 제 시간에 이뤄진 적이 한 번도 없잖아요.”

“50점이면 너무 후한가요? 미해결된 문제가 정말 많잖아요. 쌀 직불금 국정조사도 시원스레 해결된 게 없고요.”

평균 40점. 국회의 부침을 직접 겪은 20대 유권자들이 매긴 성적표다. 하지만 이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국회 생활을 하며 미래의 꿈도 찾았다고 했다.

“바닥을 쳤으니 앞으로는 더 나아질 일만 있을 거라고 믿어요. 잘못된 정치 현실을 보고 나서 제가 직접 국회의원이 되어 바로잡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어요.”(천예지)

“일부 의원들을 제외하곤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 이런 점이 홍보가 잘 안 된 것 같아
요. 앞으로 선거 컨설팅을 하면서 이런 점을 부각시키고 싶어요.”(신동훈)

“이 싸움이 계속되진 않겠죠. 상생하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거든요. 전 국회를 감시하는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어요.”(김강희)

“정치가 언제까지나 혐오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순 없잖아요. 저는 교사가 돼서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정치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나중엔 지방의회 의원에도 도전해 보고 싶고요.”(정재연)

구희령

[J-HOT]

▶ 시청률 40% 드라마, 인터넷선 조롱거리 왜?

▶ 35년 만에… 해병 1호 헬기 조종사 나왔다!

▶ 강수정 오빠 OBS 저녁메인뉴스 앵커 발탁 화제

▶ 이재오 은평을 출마, 이명박-박근혜 갈등 '뇌관'

▶ 플라시도 도밍고 "67세 현역 비결요? 그건…"

▶ 덩치 커진 파일 '공유'하고 싶다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