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학 1세대 물러나 - 윤병석 교수등 은퇴했거나 조만간 정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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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60년대부터 30여년간 한국사정체성론.타율성론으로 대변되는 일제의 식민사관 극복을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로 삼았던 민족사학 1세대들이 대거 정년퇴임을 맞고 있다.

조선후기 농업경제사 연구로 내재적 발전론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한 김용섭 전 연세대교수가 지난 2월말 정년퇴임후 최근 개인 사무실을 마련해 이사했다.만주지역 독립운동사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긴 윤병석 전 인하대 교수가 이미 지난해

8월 퇴임했으며 민족운동사적 관점에서 근.현대 지식인.농민.학생운동의 기반을 닦은 조동걸 국민대 교수도 오는 8월 정년을 맞는다.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형성연구에서 출발해 일제시기 좌우합작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사 분야에

많은 성과를 낸 강만길 고려대 교수,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대원군 정권에 대해 독보적인 연구성과를 낸 성대경 성균관대 교수도 내년 봄 정년을 맞는다.

일제시기에 태어난 이들은 해방을 거쳐 대학생 시기에 6.25전쟁을 겪는등 좌.우이념의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속에서도 일제 식민사관 극복을 위해 꿋꿋이 연구에 종사해온 한국사의 중추적인 세대.한국 사학계의 이론적 공백을 메우고 역사적

인식 혼란의 가닥을 잡은 이들은 한우근.김철준.이기백등에 이은 민족사학 1세대의 마지막 연구자로 분류된다.

주로 조선시대 자본주의 맹아 발견,근대적 사상으로 실학연구,민족의 주체적 운동등을 통해 일제의 식민사관 극복에 매진해왔던 이들이 많은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다.그럼에도 6.25세대의 냉전적 피해의식으로 인한 한계 또한 적지 않다는

지적이 후학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냉전의 반쪽 인식만으로 역사를 연구해온 결과 연구분야가 편중되는등 자체적으로 완결된 체계를 세우지 못했다는 것.

민족사학 1세대의 은퇴로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역사학계의 세대교체는 이들이 해내지 못한 새로운 역사연구의 과제를 후진에게 남겨놓았다.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한국사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내놓은 이들이 갖는 세대적 한계를 넘어 우리 역사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획득하는 것이 후학의 과제”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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