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外換위기론의 해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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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우리 경제가 멕시코와 같은 경제위기를 겪지 않을까 하는 걱정의 소리가 높다.

실제로 대외거래와 관련된 우리의 경제상황은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다.그러면 이와같은 우려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우리의 경제상황이 멕시코와 같은 경제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말 현재 총외채 규모가 1천억달러를 넘었다고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외채문제를 걱정하고 있다.1천억달러라는 숫자가 주는 위압감이 큰 것이다.이와같이 외채가 급증한 원인은 작년도 경상수지 적자가 2백37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4.9%에 이른데 있다.

그렇지만 지난해말 현재 총외채는 GDP의 22% 수준으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80년대 중반 한때 우리의 총외채는 GDP의 50%를 상회한 적이 있었다.한편 총외채에서 우리의 해외자산을 뺀 순외채 규모는 3백억달러를 다소 상회하는 수준으로 GDP의 6.4% 수준이다.

외채문제와 함께 환율의 불안정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그런데 우리는 환율변동을 볼 때 대미(對美) 가격경쟁력 뿐만 아니라 대일(對日) 가격경쟁력도 함께 중시해야 할 것이다.90년대 들어와서 우리의 수출시장은 급격한 구조변화를

보이고 있다.미국시장의 비중이 크게 줄어든 반면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동남아 시장이 우리의 최대 시장으로 부상했다.

환율변동을 보면 지난해 원화는 달러에 대해 8.2% 평가절하된데 이어 올해도 3월말 현재 5.8% 평가절하됐다.한편 일본 엔화도 지난해 달러에 대해 10.7% 평가절하된데 이어 올해도 우리의 원화와 거의 같은 비율로 평가절하됐다.

따라서 대미 환율상승은 달러의 일반적인 강세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며 지난해 이후 우리 원화는 일본 엔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강세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환율상승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할 바가 없다.환율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게 놓아두는 것이 바람직하며 장기적으로는 가격경쟁력을 반영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변동환율제도에서 환율변동에 따른 불안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지난 수년간 미.일(美.日)간 환율을 보더라도 95년 한때 80까지 내려갔던 환율이 지금은 1백20선을 상회해 그 변동 폭이 50% 수준에 이른다.

한편 올해 들어 금융기관의 외화유동성 악화와 외환보유고 감소등이 외환위기의 한 증세로 지적되고 있다.그런데 한보.삼미 부도 여파와 일본계 금융기관의 일시적인 자금회수 등으로 악화되었던 금융기관의 외화유동성은 한국은행의 외화자금 지

원 등에 힘입어 안정세를 회복해 가고 있다.

정부 외환보유고는 3월말 현재 2백92억달러 수준으로 지난해보다 40억달러 가량 줄어들었다.그런데 이와같이 외환보유고가 준 데는 올해 추가적인 환율상승을 기대한 외환 가수요(假需要)도 한 몫을 하고 있다.외환보유고가 줄어든데 반비

례해 거주자 외화예금은 지난해말보다 3월말 현재 30억달러 가량 증가했다.이러한 가수요는 환율이 안정되면 사라질 것이다.

멕시코 사태는 근본적으로 멕시코의 고금리를 노린 자본유입에 따라 멕시코 페소화가 크게 고평가된 상태에서 멕시코 경제에 대한 비관적 평가로 핫 머니(hot money)가 일시에 빠져나가고 페소화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경제가 교란된데 그 원인이 있다.현재 우리 상황은 두가지 측면에서 멕시코와 다르다.

우리 원화는 이미 평가절하가 상당기간 계속돼 멕시코의 페소화와 같이 고평가된 상태가 아니다.그리고 우리의 경우 주식시장은 20%까지 개방되었으나 채권시장이 아직 개방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멕시코와 같은 큰 폭의 핫 머니 유출은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우리의 경우 환율이 가격경쟁력을 유지한다고 판단될 때 채권시장이 개방되면 자본은 오히려 크게 유입될 것이다.

그러나 당장 멕시코 사태를 걱정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경제안정과 적정환율 유지를 통해 경상수지 적자를 GDP의 3% 수준으로 줄이고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올 1,2월 경상수지 적자가 이미 56억달러에 이르고 올해 적자 폭도 크게 줄어들리라 예상되지 않는다.만약 지난해와 같은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앞으로 수년간 계속된다면 그 때는 정말 외채위기가 발생할 것이다.

김인중 <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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