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나무의 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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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속담에'솔 심어 정자 짓는다(養松見亭子)'는게 있다.솔을 심어 어느 세월에 정자나무가 되기를 바라겠느냐는 뜻이다.이 속담은 얼핏 소나무와 정자나무를 다른 것으로 생각하게 하기 쉽지만 대개의 정자나무는 소나무다.잔솔이 커서 정

자나무가 되는 것이다.다만 모든 솔이 다 정자나무가 되지는 않는다.기후나 토양 등 자연조건에 따라 어떤 것은 잔솔로 고사(枯死)하고,어떤 것은 정자나무가 돼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비단 소나무 뿐만 아니라 모든 나무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인간의 그것과 꽤 닮아 있다.어떤 가문에서 태어나 어떤 부모에 의해 양육됐으며,어떤 환경에서 자라났느냐에 따라 거목이 되기도 하고 왜솔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주변의 잡목(

雜木)들을 베어 없애버리지 않고 방치한 탓에 좋은 소나무들이 죽어가는 현상도 인간의 삶과 비슷하다.

그와 같은'나무의 철학'을 삶과 기업에 접목시킨 분이 작고한 이병철(李秉喆)전 삼성그룹 회장이다.20여년전 여러차례에 걸쳐 현장을 몸소 조사한 끝에 용인자연농원을 세운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나무에 대한 그분의 지식과 사랑은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을만큼 각별했다.후에 술회한대로 李회장은 한 그루의 나무와 풀을 땀흘려 키우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기업의 창조과정과 성장과정을 음미한 것이다.

기업경영의 이치와 경영관리의 요체를 터득한 근원도 바로 자연과 사회의 조화속에서 합리정신을 가르쳐준'나무 철학'이었다.그래서 李회장의 경영원칙 가운데는 나무의 생리에 비유되는 것들이 많다.가령“나무를 가꾸자면 손이 많이 가고,정성

도 있어야 하며,때로는 주변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인재등용의 기본으로 삼았던 것이 좋은 예다.

그렇게 보면 나무는 인간의 의식주에 절대적인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삶의 존재론적 가치관까지 일깨운다.하지만 인간은 환경오염이나 부주의로 인한 산불 따위로 나무들을 끝없이 괴롭힌다.한 그루의 나무라도 더 심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식

목일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단지'공휴일'일 뿐이다.특히 올해는 연휴가 되니 행락 분위기가 요란하다.식목일 행락이 환경오염과 산불의 원인을 제공한다면 이런 식목일은 없느니만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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