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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비경>하와이섬 볼캐노국립공원 (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들려오는 연인들의 속삭임,시리도록 하얀 모래사장,하나로 붙어있는 쪽빛 바다와 하늘,그리고 끝없이 부서지는 파도….

상하(常夏)의 섬 하와이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하와이 볼캐노국립공원에 가면 이런 이미지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난다.멋대로 생긴 붉은 바위덩어리들,숯처럼 시커멓게 탄 검은 모래밭,가도가도 풀 한포기 없는 황량한 용암지대.볼캐노국립공원은'적(赤)과 흑(黑)의 땅'이다.

지구를 떠나 달이나 화성표면 위에 서있는 느낌이 든다.우주선이나 외계인이 나타나도 이상할 것같지 않다.

볼캐노국립공원은 8개의 섬으로 이뤄진 하와이제도중 가장 크고 남쪽에 위치한 하와이섬에 있다.하와이섬은 현지에서 빅아일랜드로 불리기도 한다.면적이 1만5백여평방㎞로 제주도의 6.5배 크기다.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와이키키해변이나 호놀

룰루가 있는 섬은 오하우섬이다.

볼캐노국립공원은 1916년 미국의 열세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공원안에는 최근까지 화산이 폭발했던 킬라우에아(해발 1천2백47)화산이 있다.가장 최근에 있었던 폭발은 83년 1월.이 화산은 지금까지 용암과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

다.킬라우에아 화구는 직경 4.5㎞,깊이 1백20로 세계 최대 규모다.

지난달 26일 오전 빅아일랜드의 힐로공항에서 차로 1시간 남짓 달려 볼캐노국립공원 입구에 닿았을 때는 장대비가 내렸다.안내자는“힐로의 날씨는 맑을 확률이 40%정도로 하루 걸러 비가 오는 지역”이라고 설명한다.

볼캐노국립공원의 전망대라 할 수 있는 볼캐노하우스에서 화산지대를 바라봤을 땐 산과 계곡사이로 안개가 자욱이 피어올랐다.전망대 주위에는 코인을 투입하고 보는 망원경이 곳곳에 설치돼 있지만 비 때문인지 화구의 밑바닥이나 쇳물같은 용암

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킬라우에아 화구벽 가장자리로 난 일주도로를 따라가면서 차츰 볼캐노가 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는지 알 것같았다.이곳에선 천지창조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혼돈과 질서,창조와 진화,파괴와 재생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일순간에

펼쳐진다.

시뻘건 용암이 분출해 흘러내리면서 시커먼 엿가락처럼 변해 도로를 뒤덮기도 하고,곳곳에서 뿜어나오는 유황성분의 수증기는 코를 찌른다.관광객들은 건강에 좋다며 이 수증기를 몸에 쐬기도 한다.

화구에서 남쪽 바닷가쪽으로 달리다 보면 수백만년전 뒤덮였던 원시림 사이로 용암이 흘러들어가 화석화된 용암수(熔岩樹)들이 서있다.또 세월이 많이 흐른 용암지대에는 이제 막 풀들이 자라고 있다.

볼캐노국립공원은 지구 생성.진화과정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실제 봄방학을 맞아 야외학습을 나왔다는 30여명의 미국 초등학생들이 신기한듯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지질공부에 여념이 없다.

지질학자들은 킬라우에아 화산이 올해안에 다시 폭발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그때 인간은 대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서 또한번 경외심을 갖게 될 것이다.빅아일랜드는 아직 미완성인 채로'만들어지고 있는'화산섬이다.그래서 빅아일랜

드를 하와이제도중 가장 젊은 섬이라고도 부른다.

볼캐노국립공원에 가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지구의 맥박과 숨쉬는 소리가 들린다. [하와이=이순남 기자]

<사진설명>

붉은 화산석과 화산재 위로 실버워드라는 독특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볼캐노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황량한'적(赤)과 흑(黑)'의 땅이 끝없이 펼쳐져 마치 화성 표면에 와있는 것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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