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년>2. 내 인생은 나의 것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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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외침은 사실 젊은이들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같은 노래를 부르는 젊은이들은 거의 없다.신세대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개성을 찾아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신'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 외쳤던 세대들이 지금에 와서 다시 부상하고 있다.

반평생 외부를 향해 쏟았던 에너지를 비로소 내적 자아에 초점을 맞춰야만 하는 이 시대의 중년,바로 그들이다.

철학자 융은 중년을'인생의 정오(正午)'라 정의했다.

해가 하늘 한가운데 솟아있는 그때,인생의 절정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의 정점이자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춘천에서 92년까지 상업을 하다 현재 강원도철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李한종(55)씨.李씨는 몇년전부터 글쓰기를 혼자만의 취미로 삼아오다 지난해 고려대 사회교육원 시창작반에 입학했다.1주일에 한번 서울 나들이하는 재미도 있고 또래

의 친구도 사귈 수 있어 점점 재미가 붙었다.

그러던중 지난 1월에는 시문학지 현대문학에 4편의 시를 실어 등단의 기쁨과 함께 시인이라는 이름도 얻었다.李씨는 내친김에 본격적으로 시를 써볼 생각이다.

마흔 넘어 시작한 취미 메이크업이 적성에도 맞아 전문과정까지 마친 金인현(47.서울서초구반포동)씨는 아예 강사로 나섰다.자신의 아파트에 대형거울까지 달아놓고 집에서 이웃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데 요즘은 너무 많은 수강생이 몰려

곤란할 지경.

“불혹의 나이를 넘으면서 초조하기도 하고 무언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그래서 수입보다는 친교를 중시하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고부터'또다른 나의 인생을 찾았구나'싶어요”라고 金씨는 말한다.

이같은 추세는 주간신문'사람과 사회'가 지난해말 6대도시 주부 5백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자기계발을 위한 활동을 하는가'하는 질문에 '하고 있다'는 40대 (36.5%)와 50대(33.3%)가 20대(18.8%)와 30대(2

5.8%)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데서도 입증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황광민박사는 “중년에는 자신의 생에 대한 디자인이 없으면 공허감을 쉽게 느끼게 돼 이를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자녀문제나 또는 지금까지 해온 일에 자신을 투영하려는 집착으로 변질돼가기 쉬운 때지요.그럴수록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생을 더 길게 보고 새로운 취미를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모회사의 부장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신촌에 헬스클럽을 차린 李희차(55)씨.그는 61년 연세대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학비를 마련치 못해 2학년때 도중하차했다.그리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결혼하고 자녀들 키우느라 숨가쁜 인생을 살아

왔다.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복학의 꿈'이 되살아나고 있었다고 한다.30여년만의 재입학은 전례도 없고 학사규정에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의 강한 의지와 학교측의 배려 덕분에 95년 늦깎이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젊은이들과 어울려 공부하

려니 학업은 힘에 부치지만 마음은 즐겁고 신이 나죠.요즘 새학기가 시작돼 리포트 내느라고 정신이 없어요”라는 李씨는 중년들어 신바람에 들떠있다.

李씨처럼 학업에 투자하면서 보람을 찾으려는 중년들의 메카는 방송통신대.지난해 40대이상 중년학생의 등록수가 무려 1만9천여명으로 95년 1만6천여명에 비해 3천여명이 증가했다.

이중 남성의 비율이 40%정도를 차지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중년의 취미생활과 만학열풍외에'명함없는 중년'을 만끽하는 모임이 늘고 있다.94년 중년남성 50명으로 만들어진 유우회(遊友會)는 노는 것만 생각하며 친구를 만드는 모임이다.그래서 회사 직함따위는 필요없어 회원끼리

명함 교환을 하지 않는다.그들끼리 동굴탐험,해안에서의 연회등 새로운 놀거리를 개발하면서 즐기기를 최우선으로 한다. 중년들의 새로운 놀이문화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화여대 李동원(사회학과)교수는“우리는 취미생활에도 품위와 명예를 생각하는데 그보다 좀더 자유스러운 취미생활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마치 유년시절에는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듯 자신을 만족시키는 놀이를 찾아야 한다”며“이를 위해

대중매체와 사회교육기관등이 새로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등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신용호 기자〉

<사진설명>

새로운 취미로 공기총 사격을 선택,그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중년들.사격중앙연합회 중년회원 50여명은 매주 서울 목동사격장을 찾아'격발과 명중'의 묘미를 즐긴다. 〈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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