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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웃이 날 괄시 … ” 잔혹한 범행 정당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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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수사기록상 그의 범행심리도 진화해갔다. 그는 “91년 첫 재판 때 집행유예를 기대했다가 실형이 선고되자 손에 쥔 십자가를 부수며 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실제 첫 살인 대상은 대형 교회 인근의 부유층이었다. 또 전과(14범) 때문에 동거녀에게도 버림받자 “돈만 생각해 남자를 농락하는 여성을 상대로 복수하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사형수로 수감된 뒤엔 “나는 사회 전체를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유영철은 ‘신’과 ‘여성’ ‘사회’로 원인을 돌리며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한 것이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유영철처럼 ▶“나를 살인범으로 만든 사회에 문제가 있다”며 범행을 정당화하고 ▶살인의 흥분(스릴)을 추구하며 ▶병적으로 거짓말을 지어내고 ▶잔혹한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르는 것을 연쇄살인범의 특징으로 꼽았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교도소에서 범죄의 종류를 불문하고 반사회적인 성향을 진단하는 성격심리 검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족→이웃→사회로 원한 키워=2007년 6월 충남 보령에서 이웃집 아저씨 부부와 할머니 등 일가 3명을 살해한 이모(32·무기징역)씨는 인터뷰에서 “가장 원한이 큰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유 없이 때린 아버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웃 일가를 살해한 동기에 대해 “초등학교 때부터 동네에서 하지도 않은 일에 누명을 씌우고 험담해온 이웃집 아저씨와 할머니에게 쌓인 게 많았다”고 주장했다.

‘원한 연쇄살인범’의 원조 격인 천모(60·사형수)씨는 “고아라고, 전과자라고 괄시를 많이 당해 억울한 게 있으면 못 참는다”고 진술했다. 그는 2000년 4월 경기도 이천에서 ‘개평을 주지 않는다’는 사소한 시비로 사람을 죽인 뒤 사흘 만에 사소한 원한이 있던 4명을 살해했다. 천씨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쌓이니까 이판사판으로 사는 것”이라며 “범행을 하고나니 속이 후련했다”고 할 정도였다.

2000년 경기도 안산 일대에서 연쇄 강도살인을 저지른 왕모(32·중국인·사형수)씨도 인터뷰에서 “외국인을 차별하는 한국 사회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망을 가지고 한국에 왔는데 욕하고 때리고 월급 안 주고 하니까 전화 사기 같은 걸 하는 것”이라며 “사실은 범죄를 저지른 중국 사람이 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며 억지를 부렸다.

반면 무기수인 김모(45)씨는 “범행 당시에 지금처럼 대화할 사람이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라고 후회했다. 그는 99년 9월 부인과 이혼한 직후 마약에 취해 아홉 살, 다섯 살 두 아들과 장인(61)을 살해했다. 김씨는 “교도소에서 기독교에 귀의해 성경을 필사하고 있다”며 “자식을 죽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부연구위원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좌절이나 슬픔도 객관화되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만 살인범 상당수에게 대화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제3자=다수 살인범에 희생된 피해자 197명을 분석한 결과 살인범을 모르는 제3자가 127명(64.5%)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면은 있으나 친하지 않은 사이는 36명, 가족 등 친한 사이는 34명이었다. 피해자의 성별은 남성 77명, 여성 116명이었다. 주로 50대 이상의 노인과 20대 이하의 여성이 피살당했다. 연쇄살인범 정남규는 “검거되지 않기 위해 여성과 노약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2000년 전남 고창 10대 소년·소녀 연쇄살인범 김모(39)씨는 인터뷰에서 "술에 취해 길을 가다 보이는 대로 쓸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아무 상관없는 피해자들을 죽이게 됐다”고 말했다.

◆공동 기획=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상기(연세대 법대 교수) 원장·박형민 부연구위원, 중앙일보 정효식·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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