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 한 작품으로 뮤지컬 희망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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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단 한 작품으로 이토록 뜨거운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김혜영(30·사진)씨는 소극장 창작 뮤지컬 ‘카페인’으로 단숨에 한국 뮤지컬의 희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탄탄한 기본기, 드라마와의 정밀한 조화, 단계별로 진화하는 구성 등 뮤지컬에서 왜 음악이 핵심인지 새삼 일깨워줬다”(조용신 컬럼니스트)는 평이다.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이화여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유학, 뉴욕대에서 뮤지컬 작곡을 공부했다. 김씨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관심이 쏟아지는 건 그의 뛰어난 재능만큼 한국 뮤지컬계가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 중인 그는 2010년 개막 예정인 무비컬 ‘번지 점프를 하다’의 음악 작업도 하고 있다.

갓 서른의 젊은이가 어떻게 해서 국내 뮤지컬 음악계를 뒤흔든 걸까. 그가 생각하는 ‘좋은 뮤지컬 음악’은 어떤 것일까.

“우선 캐릭터가 있어야죠. 뮤지컬 음악이 클래식 혹은 가요와 가장 다른 점은 드라마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주요 등장인물들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2인극 뮤지컬인 ‘카페인’에서 김씨는 초반부에 남녀 주인공 테마 음악을 선보여 전반적인 분위기를 잡아갔다. 첫 곡 ‘사랑은 거짓말’은 여주인공 세진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낸 곡. 즉 상큼한 느낌의 팝스타일을 통해 때론 좌절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자기 삶을 결정하는 신세대 여성을 그려냈다. 왈츠풍의 세 번째곡 ‘와인과 여인’은 밉지 않은 바람둥이인 남자 주인공 지민을 형상화한 곡이다. 김씨는 “캐릭터곡이 완성되면 사실상 절반은 끝난 셈”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그가 집중하는 것은 패턴화. ‘카페인’엔 모두 17곡이 쓰였다. 순서대로 음악이 나오진 않는다. 캐릭터곡-메인 테마곡-리프라이즈(Reprise·주제곡을 그대로 반복하거나 혹은 약간의 변형을 주는 것)순이다.

“틀을 갖춘 후 그 사이에 에피소드별로 음악을 삽입합니다.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인 터라 음악도 하나의 고정된 패턴이 아닌 장르를 넘나들죠. 사랑이 불붙기 시작하는 순간엔 열정적인 라틴음악을, 여주인공의 설렘은 보사노바풍의 ‘내 안의 카페인’에다 담아내는 식이었습니다.”

이렇게 캐릭터와 패턴이 결정되면 이를 “노래로 전달”해야 한다. 지금껏 창작 뮤지컬의 고질적인 병폐는 어색한 노래 삽입이었다. 사건이 광풍처럼 무대를 감싼다. 주인공은 심각하게 대사를 토해낸다. 그리곤 딱 멈추어 노래를 부른다.

반면 ‘카페인’에서 노래는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이를 위해 노래가 시작되기 직전, 살짝 반주가 들어가 암시를 준다. 운율감 있는 대사를 툭툭 던지는 것도 전주곡 역할을 한다. 또한 노래는 심경이 아닌, 사건 전달의 기능도 동시에 수행한다. “가사를 반복해 읽다 보면 자연스레 리듬이 생깁니다. 일종의 뮤지컬 작곡의 기초공사인 셈이죠.” 그가 말하는 비결이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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