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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 비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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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바젤은 독일·프랑스와 만나는 스위스의 국경도시다. 매달 첫째 주 일요일 저녁이면 비밀회의가 열린다. 세계 주요 10개국(G1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의 바젤모임이다. 육중한 철문을 걸어 잠근 채 예민한 국제 금융 현안을 다루고, 회의 내용은 일체 비밀에 부친다. 그래서 바젤의 국제결제은행(BIS) 별명은 ‘금융계의 크렘린’이다. 모국인 스위스조차 문전박대 당하다 간신히 말석에서 귀동냥하는 신세다.

케인스는 원래 과도한 금융의 역할에는 비판적 입장이었다. 그는 “문화나 상품은 세계적일수록 좋다. 하지만 금융은 가능한 한 국내에 머무르는 게 낫다”고 믿었다. 그러나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배상금 문제가 불거지자 고민에 빠졌다. 케인스는 1930년 “국제 자본 질서를 통제하려면 BIS 같은 초국가적 통화기관이 필요하다”고 노선을 변경한 뒤 BIS의 산파역을 맡았다. 그 후 배상금 문제가 흐지부지되자 BIS는 존폐의 기로에 섰다. 바젤의 지리적 이점에다 G10의 사랑방 역할로 겨우 연명했다.

BIS가 전면에 복귀한 것은 은행 파산 덕분이다. 84년 멕시코에 돈을 떼인 미국 7위의 콘티넨털일리노이 은행이 망했다. 그 전에는 독일의 헤르슈타트 은행이 문을 닫았다. 그 결과 88년 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등장했다. 이 비율이 8% 이하면 국제 금융에서 손 떼도록 못박은 것이다. 이후 BIS 비율은 은행의 생사를 결정하는 잣대가 됐다. 올해부터 대출자의 신용도에 따라 위험 가중치를 달리하는 ‘신BIS협약(바젤Ⅱ)’이 도입되면서 그 기준은 한층 강화됐다.

국내 은행들이 요즘 BIS 비율에 목을 매고 있다. 은행 간판을 내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금융위기 한복판에서 증자가 쉬울 리 없다. 그렇다고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에서 대출을 회수하려면 정부의 눈치가 보인다. ‘바젤Ⅱ’ 자체가 비 올 때 은행들이 기업에서 우산을 뺏을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정작 G10은 BIS 비율보다 금융시스템 안정을 우선하는 느낌이다. 미국과 영국은 BIS 비율 확정치가 나오기도 전에 대형 은행들에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BIS 비율은 당연히 높여야겠지만, 그렇다고 경제를 질식사시킬 수는 없다. “불경기 때 대출을 줄이게 만드는 현행 BIS 비율은 손질해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맞긴 맞는데….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