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고개숙인 기성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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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언론도 '名退' 소개

한국의'고개 숙인 남자'는 이제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진 것같다.얼마전만 해도 도도한 야심과 패기 때문에 심지어 거칠다는 평판까지 듣던게 한국의 남자였다.

이들이 요새 풀죽어 지내는 모습이 바깥 세상에도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언론의 경우 한국경제의 우려상황을 소개하면서 명예퇴직자들이 '고개 숙인 남자'로 불리는 실상도 소개하고 있다.

해방전후에 태어나 숱한 역경과 격류를 헤엄쳐온 이들 중.장년세대가 돌연 사회의 부담스런 존재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 밖에서까지 연민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긴 기성세대가 무거운 짐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은 미국도 마찬가지다.이들의 소위'베이비 부머'가 심각한 고민거리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2차대전 종식후 46년부터 20년 기간중에 태어난 이들 중.장년세대들의 장래문제를 놓고 미국사회는 심각한 논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약 8천만명의 베이비 부머들이 늙어가면,그것도 생활여건과 의료발달로 장수할수록,전체 국민의 부담이 커진다는게 요새 고개를 들고 있는 우려의 핵심이다.

이들의 은퇴가 종결되는 2030년에 이르면 지금의 소셜 시큐어리티재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걱정한다.이 사회복지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자면 그때 가서는 후손들이 봉급에서 80%씩은 내놓아야 할 판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가 하면 소셜 시

큐어리티의 민간기업화 얘기까지 정색으로 거론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베이비 부머에 대해 거침없이 노출되고 있는 피해의식은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가령 이들이 은퇴후 무위도식(無爲徒食)하게 되는 상황도 과거에 비해 크게 악화될게 없다는 설명이다.현재 미국의 근로인구는 전체의 46%다.1억2천만명이 일하고 1억4천만명이 일을 안한다.2030년이면 그것이 1억6천만명 대 2억명으로,일하는 사람이 44%로 떨어지기는 한다.그러나 베이비 부머의 인구비율이 최고에 이르렀던 60년대 중반에도 근로인구는 37%밖에 안됐다.베이비 부머 때문에 비(非)근로인구 비율이 커져 부담이 악화된다는 말은 성립이 안된다는 것이다.

베이비 부머는 40년대 이후 줄곧 미국의 문화와 생활환경을 변화시켰다.이들은 미국사회에 많은 기복을 불러왔다.로큰롤과 범죄증가,주거지역의 교외확대 등 그 예는 허다하다.

그러나 30년대 대공황,두 차례 세계대전후에 찾아온 이들을 맞아 미국은 활발한 공공부문의 정책들을 통해 생동하는 국가의 면모를 마련했다.

52년부터 70년사이 초.중등학교에 대한 투자가 2백75% 늘었고,64년부터 80년까지 대학생이 1백25% 증가하는가 하면 대학교수진이 두배가 됐다.사람과 인프라에 쏟아넣은 정부의 활기찬 공공투자 덕분에 미국은 어느 때 보다 자신

감이 넘쳐흐르는 분위기를 과시할 수 있었다.어떠한 난관이나 고난도 극복한다는 패기가 전국민사이에 팽배했다.

사회의 자신감 회복 절실

지금은 비록 적지 않은 미국인이 21세기에 나누어 먹을'파이'의 크기를 걱정하고 대책강구를 촉구하는 야박한 상황이지만,그래도 미국의 베이비 부머는 심각하게 비관적인 꼴은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만만치 않다.왜냐하면 뒤에 오는 세대에게 그들이 물려주는 경제가 괜찮기 때문이다.

'명퇴(名退)'의 상처로 신음하는 우리의 기성세대는 상황이 서글프다.

어느 때보다 사회의 자신감회복이 절실한 때다.중견세대의 희생은 이에 결코 도움이 안된다.모든 세대가 서로 기대어 살면서 국가가 다시 생동할 수 있게 하는 길은 정부와 정치가 마련해야 하는 몫이다. 한남규 (미주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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