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 2,3세 한국사 배워야 세대 간 문화단절 안 생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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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조선시대 문집은 보통 2권 1책으로 이뤄지는데, 인쇄를 위해 필요한 목판이 40~50장 정도입니다. 목판 한 장에 2페이지를 인쇄하니까 문집은 보통 100쪽 분량이 되죠. 요즘 이런 목판 한 장을 판각하려면 대략 200만원 정도는 듭니다. 조선시대의 기록문화유산은 출판이 어마어마한 문화사업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미국·캐나다 6개 도시에서 치른 ‘역시(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성적 우수자 20여 명이 고국을 찾아 19~21일 안동·경주 지역 역사문화 탐방을 했다.


20일 경북 안동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 온도·습도에 따라 자동으로 개폐되는 전동 창문 등 첨단 설비 속에 조선시대 목판 5만8000여 점이 보관된 곳이다.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이 ‘장판각’에 미주 교포 20여 명이 모여 관계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9월 미국·캐나다 6개 도시에서 치른 ‘역시(歷試·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성적 우수자로 뽑혀 고국을 찾은 이들이다. 한국말이 서툴러 영어로 시험을 치른 이민 2세, 20여 년 만에 고국을 찾는다는 교포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19~21일 안동·경주 지역 역사문화 탐방을 나섰다.

임일빈(52·미국 뉴욕)씨는 “미국 이민의 물결도 곧 끊길 텐데, 현지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2·3세들로만 교민 사회가 채워지더라도 한민족으로서 동질성을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민 역사가 훨씬 긴 미주 일본인들은 현지에 거의 동화돼 문화적 동질성을 잃었다고 한다. 한인교회에서 한국사 교양강의를 4년째 맡고 있는 임씨는 “국사 공부의 인기가 높지만 수강생의 절대 다수가 60대 이상의 노년층이다. 어린 학생들이 한국사의 기본 양식은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민 사회에서 세대 간의 문화 단절은 곧 역사의 단절이 돼 버린다. 지금이 한국어와 역사·문화 교육이 교민 사회에 뿌리내려야 할 결정적 시기라는 것이다. 문영주(40·미국 버지니아)씨는 “미국에도 한류 붐이 일면서 아이들이 한국 대중문화에 흥미를 많이 느낀다”며 “한국의 역사·문화 교육이 교민 사회에 자연스레 자리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정옥자)와 중앙일보가 공동주최하고 GS칼텍스가 후원한 미주 역시는 첫 시험에서 1100여 명이 응시해 교민 사회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내년에도 제2회 미주 역시가 예정돼 있다.

글·사진 안동=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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