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코엔 감독 신작 '파고' - 김정룡 영화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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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코엔 형제의 영화는 필름 누아르.코미디.갱스터를 오가며 다양한 영화색채를 구사하면서도 하나의 일관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무라카미류의 소설 제목을 빌려 말한다면 누구도'5분 뒤의 세계'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분노의 저격자'(84년)에서 불륜은 어느 틈에 살인으로 이어지고 솜씨 좋은 탐정은 가녀린 여인에게 죽음을 당한다.'애리조나 유괴사건'(87년)은 아기를 둘러싼 소유의 관계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밀러스 크로싱'(90년)에서는

치밀하게 전개되는 갱스터들의 두뇌 게임이 승자와 패자의 자리를 자주 뒤집어 놓는다.그 점에서'바톤 핑크'(92년)는 압권이다.얼 호텔은 지옥과 천국을 번갈아 보여준다.초현실과 극사실,나른한 몽상과 리얼한 불안,쾌락과 불쾌,명쾌한 해

석과 혼란한 부조리가 번갈아 관객을 방문한다.

코엔의 명성을 잠식한 영화로 알려진'허드서커 대리인'(94년)도 마찬가지다.하급 배달부가 하루 아침에 그룹 총수가 되고 사장이 느닷없이 투신자살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신작'파고' 역시 이 게임의 구조를 답습한다.

자동차 세일즈맨 제리 룬더가드는 빚에 쪼들려 있다.단순한 그는 황당한 해결책을 떠올린다.자작 납치극을 벌여 아내의 몸값을 돈많은 장인으로부터 뜯겠다는 것이다.그래서'웃기게 생긴'칼과 정체 불명의 인상파 게어를 청부업자로 고용해 일

을 벌이는데 사태는 생각밖으로 자꾸만 꼬여 나간다.

코엔 형제는 스릴러의 추적 구조를 밟지 않는다.제리의 한심한 계획을 미리 알려주고 납치범들도 처음부터 공개한다.영화는 이제 사건이 애초의 의도와 엇갈려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반전이 아닌 뒤틀림,새로운 가지치기들의

난맥상 말이다.제리는 인디언 전과자를 통해 납치범을 소개받지만 그중에 게어가 끼여들 줄은 몰랐다.실은 칼도 알지 못했다.

게어는 등장인물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코 살인마.그로부터 연쇄살인이 시작된다.경찰을 죽이고 목격자를 없애버리고 제리의 부인도 살해한다.끝내는 칼까지 죽인다.칼은 제리의 장인을 죽이고 주차 관리인을 죽인다.아무도 예상치 못했지만

7명이 살해당한 것이다.이건 제리의 계획이 아니다.너무 멀리 나간 것이다(Far Go).파고는 지명이지만 인간의 과욕이 빚은 불행을 암시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물신주의에 관해 코엔 형제가 던진 농담은 우울하다.어느 멍청한 세일즈맨의 비애와 사이코 인질범의 광기가 만난 지점,즉 파고의 대지 위엔 오늘도 흰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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