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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무림>1. 9룡과 김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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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언제부턴가 전무림인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게 되는 무림지존 자리가 개인의 무공과 덕망보다 출신지나 세력의 다과에 의해 결정되기 시작했다.강호인들은 무림경제의 파탄과 부패,무공교육의 낙후등 작금의 난세는 진정한 무림지존이 나타날 수 없었던 풍토에서 비롯했다고 믿었다.

모든 강호인의 바람은 한곳으로 몰려있다.다가올 15대 무림지존 비무(比武)대회에는 무림의 평화와 질서를 바로세울 수 있는 진짜 절대자가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바람 그것이었다.다시는 귀계(鬼計)와 암투와 술수가 판치지 않는 강호무림을 만들 수 있는 명실상부한 무림지존의 탄생,그것을 기다리는 강호인의 염원이 이번에는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춘래불사춘이라 했던가.

동교검군 대중검자(72)의 미간이 짙게 찌푸려졌다. 바람검법으로 일세를 풍미한 그에겐 좀체 없는 일이다.운명이 천하 제2인자라 불리게 한 노고수.칼 한자루 들고 강호에 들어와 무림맹주 비무대회결승에서 세번이나 아깝게 물러서야 했던 그다.금분세수(金盆洗手:무림인의 강호은퇴 의식)를 하고 다시는 검을 잡지 않겠다던 맹세를 깨고 재출도한 현재 강호정세는 이 불멸의 노검객에게도 지독히 풀기 어려운 미로처럼 얽혀들고만 있다.

“결국 그 방법밖엔 없겠군.” 한숨과 더불어 나직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꼬박 하룻밤이 지나있었다.구룡(九龍)이란 괴물들과의 한판전쟁은 그에겐 분명 버거운 것이었다.특히나 판관필(判官筆)의 명수 회창검사의 등장은 꽤나 그에게 타격을 안겨주었다.그는 여러모로 자신과는 극성(極性)이 되는 인물이다.회창객의 무예는 자신과 유사하되 더 화려했다.바람검법으로는 회창객의 춘추필법을 막아내기 어렵다는게 솔직한 자평이다.신한국방 대표로 그가 무림지존대회에 나올 경우 그의 네번째 대권도전은 실패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집요한 자, 사사건건 내 발목을 잡으려드는군.”

현 무림지존 공삼거사에 대한 원망이다.누구보다 그는 공삼을 잘안다.함께 방파를 만들기도 했고 함께 패도를 걷는 전대 무림지존들과 맞서 싸웠으며 무림지존대회 결승전에서 만난 것도 두번이나 됐다.그의 예상을 깨는 위기돌파 능력은 언제나 탁월했다.이번에도 공삼은 최악의 경우가 아니라면 후계자 낙점이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던 회창객을 내세워 자신을 좌절시키고자 한다.결론은 하나였다.회창객이 신한국방 대표로 무림대회에 출전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그러려면 공삼의 아들이자 천방지축 소왕자(小王子) 현철의 사악한 무공내력을 낱낱이 들춰내고 무림경영에 실전경험이 적은 회창객을 사면초가의 궁지로 몰아넣는 것뿐이다.그렇게만 되면 결국 신한국방 전체가 지리멸렬하고 말 것이다.

“공삼에게 섣불리 회창객을 내세운 것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알려주고 말겠다.” 대중검자의 눈빛이 다시 강렬해졌다.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대중검자에겐 그것이 있었다. 중원 무림은 때이른 격동에 싸여있다.8개월여나 남겨놓은 제15회 천하무림지존 비무대회 열기가 벌써 후끈 달아오른 탓이다.열기는 현 무림지존이자 신한국방의 주인인 상도대제 공삼거사의 후계자 싸움에서 비롯했다.구룡이라 불리는 신한국방의 9대

고수가 저마다 무림지존의 후계자를 자처하면서 암투를 벌였다.무림지존의 후계자는 당금 무림의 최대 방파인 신한국방의 전고수를 휘하에 둘 수 있게 되고 이는 곧 차기 무림지존의 자리를 약속하는 담보와도 같은 것.뉘라서 그 자리를 노리지 않으랴.

구룡은 항룡(抗龍)무림판관(武林判官)회창객(客),독룡(獨龍)독불군자(獨不君子)찬종검(劍),노룡(怒龍)백미신군(白眉神君)형우공(公),덕룡(德龍)백발검사(白髮劍士)덕룡공(公),와룡(臥龍)무림훈장(武林訓長)수성객(客),잠룡(潛龍)무골호

군(武骨好君)홍구진인(眞人),허룡(虛龍)영남일군(嶺南一君) 허주공(虛舟公),맹룡(猛龍)무림독보(武林獨步)한동거사(居士),유룡(幼龍)경기일수(京畿一秀)인제거사의 아홉 고수를 일컫는다.

판관 출신인 회창객은 무림총리 시절 당시 강호 제일무공이자 누구도 감히 대항할 엄두를 못내던 무림지존의 문민공력에 수차례 맞서 싸웠다.항룡이란 호칭은 그래서 얻은 것.한자루 판관필(判官筆)로 펼치는 정법공(正法功)은 특히 사도(邪

道)와 흑도(黑道)의 무공을 상대하는데 최강의 무공으로 꼽힌다.지금까지 무림의 철칙이었던 '강자존(强者存:강자만이 살아남는다)'을'법자존(法者存:법대로 하는 자만 살아남는다)'으로 바꿔놓겠다는게 그의 포부다.

찬종검은 늘 혼자 싸워왔다.독불군자란 이름도 그래서 붙었다.이리저리 문파를 옮겨다녀 무림의 반항아,무졸지장(無卒之將),변신공의 귀재로도 불렸던 그는 신한국방 입문을 통해 거듭나기를 꿈꾼다.가장 가난한 무림고수이자 청년검사들이 가장

흠모하는 무림인중 하나다.

형우공은 신한국방의 대부이자 민주공의 1인자.흰 눈썹 때문에 백미신군으로 불리며 주말이면 주로 산악에서 그를 따르는 방내 고수들과 함께 민주공을 연마한다.무림지존 공삼거사의 수제자.세차례나 공삼거사를 떠나 독립할 기회가 있었으나

포기한 뚝심과 의리의 철혈한(鐵血漢)이다.최근 신한국방 방주 임명을 둘러싸고 노기를 참지 못해 무리하게 내공을 끌어올리다 주화입마(走火入魔:무공을 익히다 화를 입어 반신불수가 되는 것)에 빠졌고 이 소식을 들은 무림지존은 무척이나

마음 아파했다고 한다.

백발검사 덕룡공은 26년전 공삼거사의 호위무사로 무림에

입문했다.형우공과 함께 민주공의 최고수.그의 독문무공은 속을 알 수

없다 해서'양파신공'으로 불린다.

관악

무학교의 대훈장을 지내 무림훈장으로 불리는 수성객이 자랑하는 무공은

흡인공.흡인공은 상대의 정신을 빼앗아 자기편으로 만드는 무공으로

웬만한 무림고수는 이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철혈한

형우공이 첫대면에 흡인공에 빠져 수성

객과 호형호제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강호의 일화가 됐다.현 무림지존인

공삼거사와는 공삼이 전대무림총리 장택상에게 무공을 배울 당시 서로

인연을 맺었다.군벌출신 무림지존인 철혈대제 박통의 철권통치 시절

공삼거사를 공식석상에서 최고의 재

야 무림인으로 소개했고 80년 무림의 봄때는 관악무학교 학생처장의

신분으로 무학생들을 두둔해 무림보안대에 끌려가 8일간 고초를 겪기도

한 강골이다.드러난 세력이나 뛰어난 무공은 없지만 구룡중 공삼거사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언제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와룡이라 불린다.

홍구도사는 합리공과 유술(柔術)의 달인.무림총리와 신한국방 방주를

거친 그는 국내외 최고의 무공대학에서 수련을 마쳐 무림인중 누구도

따르지 못할 화려한 무력(武歷)을 갖췄다.무골호군이란 별호는 그의

화려한 무학경력과 부드러운 성품

을 나타낸다.

허주공은 마음을 비웠다.그래서 허룡으로 불린다.그렇다고 그를

깔보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그가 이끄는 신한국방내 정예고수

모임인 민정단은 영남일대의 최대세력.누구든 그의 도움을 얻어야만

대권에 한발짝 다가서게 된다는게 강호의 정

설이다.현 무림지존의 탄생도 그에 힘입은 바 크다.그는 용좌에

앉기보다 용을 만드는 인물이다.

한동거사는 최근 방주임명을 둘러싼 알력으로 신한국방 밖의

재야무림과 활발히 접촉한다는 소문이 있다.강호정세에 밝고 노련하지만

딱이 내세울 무공이 없다는 것이 약점이다.과거 폭탄주공을 즐겨 사용해

주변에선 취룡(醉龍)이란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인제거사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유룡.무림지존의 총애설이 나돌아

구룡에 합류했지만 무공을 익힌 연륜이 짧고 지닌 세력도 작은데다

신한국방의 외곽에 홀로 떨어져 있는 터라 돌발상황이 아니면 여의주를

얻기는 힘들다는게 강호의 풍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무림인들은 이들의 싸움을 구룡쟁패라 불렀다.

공삼

거사가 신한국방의 방주로 항룡 회창객을 임명한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신산.귀계의 명수 공삼거사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공삼의 마음을 얻는 자 천하를 얻으리라”는 잠언이 강호를

떠들썩하게 했으나 오래도록 공삼은 구룡중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었다.전대지존들의 은퇴후는 한결같이 비참했다.무림옥에

수감되거나 배반자의 독살공력에 쓰러져야 했다.부패한

무공,강호무림인의 자유와 평화를 핍박하고 무림의 부를 독식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했던 전대무림지존을 자신의 손으로 형벌에 처한

공삼이 아니던가.누구도 섣불리 믿어선 안된다.최소한 자신의 퇴임후를

책임져 줄 인물을 고르거나 그렇게 만들어야 했다.원래 공삼은 그런

자가 나타날 때까지 구룡이 서

로 물고뜯는 것을 지켜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무림의 일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법.천방지축 소왕자

현철이 상벌 한보문과 연루됐다는 소문이 무투(武鬪)로 비화되고

날치기로 제정한 무림근로법에 전무림인이 항거하고 나섰다.게다가

공삼에겐 거의 유일한 동지였던 노룡 형

우공마저 주화입마에 빠지고 말았다.공삼은 더이상 구룡의 물고뜯기를

지켜볼 수만은 없게 됐다.그는 마지막 선택을 조금 빨리 해야

했다.회창객을 신한국방 방주로 임명해 무림인의 심기를 다독거리고자

한 것이다.최소한 공삼은 시간을 벌어야 했다. <이정재 기자>

(※다음편은'구룡과 소왕자')

<사진설명>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들의 물밑 움직임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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